바로 당신이기에…

작성일2017-05-18

집에 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첫째 딸이 태어났고, 시간이 더 흘렀지만 그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아내는 밖에 나가고 나는 어린 딸과 함께 저녁으로 라면 하나 끓여서 먹었다. 그날따라 우리 딸은 라면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딸이 잘 먹는 모습이 예뻐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국물에 식은 밥이라도 말아 먹으려고 기다렸다.
그런데 면을 거의 혼자서 다 먹은 이 딸이 라면 국물에 말은 밥까지 맛있다면서 계속 먹는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면을 먹는 딸은 예뻐 보였는데 남은 국물에 말아 놓은 밥까지 먹는 모습은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았다.
웃기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 때 정말 힘들었다. 아버지인 나도 먹어야 하는데, 딸은 전혀 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딸이 배를 채우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남은 국물과 밥 조금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면서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싱크대 안으로 떨어졌다.

밥을 든든히 먹고 난 딸은 이내 잠이 들었고, 나는 그 딸이 깰까봐 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입에 수건을 물고 한쪽 옆에서 기도를 했다.
왠지 억울했고 속상했다. 너무 배가 고팠고 또한 힘들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주님께 나의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쏟아 놓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님은 내게 조용히 하나를 물어보셨다.
“너는 누구냐?”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무엇을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자 주님은 그 질문을 더 줄여 주셨다.
“너는 지금 이 아이에게 누구냐?”

그랬다. 나는 이 아이에게 아버지였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상황과 상관없이 주어진 나의 이름이요 정체성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아이가 아파도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이며, 이 아이가 죄를 지어도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인 것이었다. 부유하고 여유가 있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만 내가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궁핍하며 심지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 아이가 가져가도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로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 상황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상황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내가 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아버지라는 이름을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 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게 그것을 감당할 책임과 능력과 특권으로서 주신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서 딸아이는 악몽을 꾸었는지 잠에서 깨어 울었다. 나는 딸을 안고 위로해 주었다.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딸과 함께 다시 울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귀한 딸의 아버지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상황을 통해서 아버지로 성장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도 남은 감기의 여파로 목이 지독하게 아팠고 약을 먹으니 힘들었다. 한 주간만 전화나 상담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전화를 했고 상담을 한다. “목사님 목이 많이 아프시죠…”라고 운을 띠우면서도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어야 했다. “목사님 많이 바쁘시죠…”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설교 준비해야 할 시간도, 밥을 먹어야 할 시간도 빼앗아갔다. 하지만 감사하다. 왜냐하면 내가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더 목사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많이 지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가? ‘내가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마음속에서 분노와 원망이 솟아오른다면, 그렇다면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누구인가?’ 하고 말이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왜냐고? 바로 너이기 때문이니까!”라고 말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 위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물으셨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지만 분명히 예수님은 아마 그 대답을 아셨을 것이다.
“왜냐고? 바로 너이기 때문이니까!”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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