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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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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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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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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프로필
- 학력
건국대학교 졸업
덴마크 외무성 초청으로 Nordic Agricultural College에서 연구(농촌사회개발 전공)
이스라엘 외무성 장학금으로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및 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 경력
대통령 비서실 초대 새마을 담당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교 교수 역임
건국대학교 농과대 학장, 건국대 부총장 역임
한국농촌사회학회 회장, 아시아농촌사회학회 초대 회장 역임
현재 : 건국대학교 농업교육과 교수,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원장, 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 한국, 이스라엘 친선협회 상임부회장
- 저서
<잘사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 국민정신과 교육> <이스라엘 그 시련과 도전> <천재는 없다> <이스라엘 농촌사회 구조와 한국 농촌사회> <이스라엘 민족의 지혜>
내용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에서 유일하게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열 여덟 살에 비로소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상경,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이스 케이크 행상 등을 하며 겨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찌들어지게 가난했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었지만, 그는 구두닦이를 하면서도 유학의 꿈을 꾸었고, 이틀을 굶고서도 비관은커녕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 분께 감사했다. 꿈꾸는 청년 류태영에게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유학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지 13년만에 구두닦이 소년 류태영은 덴마크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본문 190면 참조)당시 우리나라와 덴마크는 수교도 없던 터라 그의 유학, 그것도 편지 한 통 쓰고 그 나라의 초청을 받아 유학가는 경우는 거의 기적이었다.
덴마크 말이라고는 알파벳도 모르던 그가 까막눈으로 시작한 덴마크 유학생활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본문 205면 참조)
그는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그곳에서 또다시 꿈을 꾼다. 그 나라에서만이 아닌 전세계를 순회하며 농촌을 비교연구하겠다는 당찬 꿈을...
무일푼이었지만, 그는 덴마크 정부 특별 예산 약 3만 달러를 지원받아 유럽의 여러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본문 235면 참조)
결국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해보기도 전에 안될 것이라고 포기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화이다.
귀국후 그는 청와대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는 핵심에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감동을 자아냈던 그의 강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본문 249페이지 참조)
모든 것이 안정되고 아무 걱정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다. 또 다시 이스라엘 유학의 꿈을 꾸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당시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만류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농촌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더 하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것이 그와 육 여사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1973년 4월, 나이 37세에 류태영은 이스라엘 국비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그는 최단시일(4년 반) 내에 이스라엘 최고 명문인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고,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국립대학인 벤구리온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류태영은 이스라엘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인물이 되었다.
7년간의 이스라엘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게 된 것도 그의 조국사랑에 기인한다.
그는 아무리 그곳에서의 생활이 안정되고 인정을 받아도 한시도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었기에 결국 귀국, 모교인 건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내년이면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류 박사는 현재 건국대학교 농업교육과 교수,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원장, 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 상임부회장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우리나라 및 전세계 각국에 다니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을 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류태영 박사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역경 속에서 갖은 시련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이 되어 주자는 뜻에서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극복해 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글을 쓰며 무엇보다도 진솔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려 부단히 노력하였고 진실한 이야기만을 쓰고자 노력했다. 그러기에 너무도 가난했던 집안 사정을 숨김없이 밝혔고, 천하게 살아온 청소년 시절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진실은 진실에게 통하며 진실이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고 믿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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