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 기도로 다시 주께 돌아왔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교회 유아부에 출석한 ‘순복음 키즈’다. 제주도 함덕 출신인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였다가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누군가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가 되셨다. 어릴 적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학교를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교회를 향한 발길을 끊었고 청소년기에는 방황을 했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니는 매일 같이 눈물로 기도하셨고, 이를 수년 간 지켜보던 나는 결국 고 2때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교회 출석을 결심하게 됐다. 어머니와 함께 대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이 날선 검이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어린 나이였지만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변화를 일으켰다.

대입을 준비해야 했던 고 3시절, 나는 뚜렷한 진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음악 시간에 가창 시험을 보면서 음악 선생님의 눈에 띄었고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 하긴 했지만 나의 진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음대 진학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친구의 권유로 교회학교 고등부 성가반에서 봉사도 시작했다.

성악공부 1년 만에 음대에 입학한 나는 2002년 주일3부 예루살렘찬양대에 들어갔고 솔리스트(테너)로 활동하며 예배 회중 찬송을 인도했다. 어머니는 주일 3부 예배 시간이 되면 누구보다 일찍 교회에 오셔서 찬양대석 반대편 맨 앞줄에 앉아 예배를 드리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들 모습에 언제나 감사하셨다. 내 인생의 9할은 어머니의 기도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주님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됐다.

그런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고 10년 전 아버지가 주님을 영접하면서 함께 예배 드리는 믿음의 가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가족이 한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기에 믿음의 가문이 이어지길 기도한다.

현재 나는 파주시립합창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모든 이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어 감사하다. 또 언제나 나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나는 하나님께 온전히 찬양하며 헌신하는가’를 되묻고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다시 주님 앞에 나왔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를 부르면 내 마음은 언제나 뜨거워진다. 신앙 열정을 회복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에 지금도 나는 이 찬송을 즐겨 부른다.

코로나19로 예전처럼 어깨를 서로 부딪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가장 마음 아프다. 찬양대석에 앉아 비어 있는 예배 자리를 볼 때면 속히 코로나19가 종식 돼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길 기도한다. 또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 주께서 맡기신 소명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간구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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