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애통함에서 건져내고 복 주신 주님

나는 이름을 김애윤에서 김승희로 개명했다. 누가 봐도 애통하고 애처로운 삶에서 주님을 만났으니 승리하라는 의미로 30여 년 전 교회 구역식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당시 내 삶은 이름을 바꾸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다. 가정형편은 어려운데 남편은 돈 한 푼을 주지 않았고 매일 술을 마셔 딸 둘 아들 둘 자식들에게 본이 되지 못했다. 나는 파출부와 청소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홀로서고 또 바쁘게 살면서 삶의 괴로움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크고 있는지 돌보지 못했다. 큰 아들이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일탈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내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자 주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다.

주일에 아파트 입주 청소를 하고 몸이 힘든 가운데도 7부 예배에 참석해 예배를 드리면 마음이 너무 평안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성경말씀이 꼭 나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다. 어느 날 청소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며칠을 참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어 병원에 가니 허리 수술을 해야 하고 20일 입원 치료에 병원비가 모두 400만원이라고 했다. 너무나 큰 금액이어서 수술을 예약하기 전 지팡이를 짚고 수요예배에 참석했다. 예배 시간 내내 통증으로 몸을 비비꼬며 괴로워하자 누군가 내 등에 손을 얹고 중보기도 해주었는데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순간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진통제를 버리고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찾았다. 5일 금식을 작정하고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드리고자 100만원을 헌금하고 ‘하나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습니다. 고쳐주세요’라며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금식이 끝났을 때 내 허리의 통증도 사라졌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바로서야 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말씀 중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에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온전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주중에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만난 주님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전도도 열심히 했다.

그 사이 세 자녀는 성장해서 자기 앞가림을 하는데 큰 아들만은 여전히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고 나는 그런 아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큰 아들은 20대 후반 집을 나가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행복으로의 초대’를 들고 길거리 전도를 하다가 우연히 길에서 아들을 만나게 됐다. 아들은 퀵 서비스를 한다고 했고 결혼할 여자도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들은 야무진 아내를 만나 부지런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효심이 깊어 “우리 엄마 힘들면 안 돼”라며 늘 신경써준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주님께서 나를 일으켜주셨다. 나는 앞으로도 좋으신 주님을 만방에 알려 각 가정이 택함 받고 축복받기를 힘써 도울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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