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할 때 강함 되시는 승리의 하나님

위하수증 두 번의 유산 등 아픔 위로

나는 30여 년 전 위하수증을 앓아 체중은 빠지고 기운 없이 누워있기 일쑤였고 둘째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설상가상 허리를 다쳐 남편 월급의 대부분을 나의 약값과 치료비로 사용하면서 형편도 안 좋아졌다. 친정과 시댁 모두 우상과 미신을 믿었기 때문에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람을 찾아 갔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나는 허리통증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될 것이고 첫째 아들이 5살이 되면 죽는다며 130만 원을 요구했다. 나는 돈이 없어 친정어머니께 호소했고 사정을 들은 어머니가 그 사람과 70만 원에 타협을 봐서 불공을 드렸지만 나의 건강은 더욱 안 좋아져 뱃속에 있던 셋째 아이도 잃게 됐다.

집 근처 교회에서는 항상 같은 시간 종소리 대신 찬양을 틀어줬는데 하루는 찬양에 많은 위로를 받고 나를 전도하기 위해 우리집을 찾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장님을 따라 예배에 참석했다. 조장님은 우리 집 곳곳에 있는 부적부터 없애야 한다며 전부 가져가서 태우셨는데 부적이 사라지자 내 마음에 평안함이 깃들었다. 이후로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병이 낫지를 않아 오랜 시간 반신반의했다.

나의 이런 마음은 오산리기도원 금식성회에 참석하며 변했다. 믿음으로 약을 버려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견고한 믿음이 마음에 들어 왔다. ‘하나님 약을 버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삼일 금식을 하고 병 고침을 받았다. 나는 남편과 아들도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남편은 늘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까 내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근심을 늘 술로 풀었고 나와 아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아들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교회에서 봉사하며 건실한 믿음의 일꾼으로 자랐다. 매주 청년철야예배를 아버지 몰래 다니던 아들이 아버지께 진실 되게 말씀 드리고 마음 편히 교회에 나가겠다며 크리스천답게 이야기했다. 나의 우려와 달리 남편은 우리 가정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울타리라며 ‘네가 알아서 해라. 명절에 제사상 앞에서도 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교회에서 만난 자매와 결혼해 6개월 된 딸의 아빠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물질적 축복을 부어 주셔서 남편의 기계제작 사업이 잘 되고 20년 간 은행 대출 한 번 받은 적 없이 매일 기쁘게 근심 없이 지내고 있다. 바라기는 한 달에 한 번씩 예배 약속을 지키고 있는 남편이 매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따를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앞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기를 더욱 뜨겁게 기도할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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