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가 주는 유익

작성일2020-05-01

“오늘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아이가 공부시간에 낙서를 많이 하는데 그림을 배우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시는데 어떻게 할지 막막하네요. 해야 할 공부도 많은 데 미술학원까지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하고. 미술치료라는 것도 있던데 그것도 미술학원을 가야만 가능한 건가요?”

미술이나 악기 배우기 등이 아이가 어렸을 때는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학교공부가 시작되면서 도구과목에 밀리다 보면 중요도가 떨어지게 된다.
필자의 딸 쪽지는 3세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다.
“아이에게 그림을 가르치지 마시고 좋은 그림을 많이 보여주세요. 집에선 명화를 볼 기회가 적으니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자료로 아이에게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시고 세계적인 명화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그 외에는 아이가 미술도구를 가지고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최소한의 가르침만 해 주세요. 아이가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도 미술학원에 와 물통을 엎거나 옷이나 벽에 뭐가 묻을까 겁내지 않고 편하게 도구를 가지고 있는 기회를 주시면 됩니다.”

동네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선생님들이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바람 부는 날 자전거 타기를 그려볼까요?” 하시더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바퀴가 몇 개죠? 바람이 부니까 머리는 어떻게 그려야 하나요? 뒤로 날리겠죠.”
이런 친절한 설명으로 아이들의 창의성이 들어갈 공간을 주지 않았다.
바퀴 하나짜리 자전거를 그릴 수도 있고, 바퀴가 세 개인 자전거도 생각할 수 있다. 머리는 위로 날릴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그 생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게 해주세요. 대회 나가서 상을 받아야 해요”가 아니라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만 달라고 한 이유다. 쪽지는 호주에 갈 때까지 몇 년 동안 미술학원 가는 시간을 즐겼다.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서 아이들이 말이나 글,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혹은 표현하지 못했던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읽고 도움을 주는 것이 미술치료다.
‘그림을 그린다고 뭐가 해결이 되겠어?’ ‘그림을 보고 뭘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겠지만 전문가의 훈련된 눈으로 보면 부모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 아이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 아이의 그림만 보면 저절로 웃게 되거나 눈이 맑아지는 낙서를 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는 낙서처럼 불완전해 보이는 그림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를 가지지 않고 그리는데도 무의식적으로 택한 빛깔이나 사물의 모양, 배치 등을 통해서 아이의 마음 상태나 생각의 자리가 드러난다.
호주에 처음 갔을 때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 아이들의 그림에는 늘 비행기가 있었다. 어떤 그림 속에도 비행기 한 대가 있었고 그 비행기 안에는 늘 아빠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갑자기 아빠랑 떨어져서 살다 보니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행기 타고 오시는 아빠로 어디든지 그려 넣었던 것이다.
가족을 그린 그림에서 한빛이는 아빠는 앞치마를 입고 청소기를 돌리는 모습으로, 엄마는 가방 메고 학교 가는 학생으로 그려 놓았다. 아빠가 호주에 오시면 늘 집 안일을 하고, 엄마는 날마다 가방을 메고 영어학교로 달려갔기 때문에 아이의 그림에 엄마, 아빠의 역할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이 그림을 보고 남편은 아이들이 한국에 올 때면 강연장이나 방송을 하러 갈 때,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빠가 양복을 입고 강연도 하고 방송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아이의 그림을 보지 않았다면 아이가 아빠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미술치료란 이렇게 아이가 무심히 그리는 그림을 통해서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아이에게 “왜 세상을 그렇게 보느냐. 시선을 바꿔라. 생각을 바꿔라” 가르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미술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상처주지 않고, 어른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어른이 살짝 엿보는 것이다. 그 목적은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안아주고 보듬어 주기 위해서다.

미술치료를 통해서 아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했으니 어른이 고칠 수 있는 것을 먼저 고치고, 어른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면서 아이가 다른 눈이나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다른 창을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요즘 우리의 현실에선 온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가능한 모든 방법은 다 배우고 적용하면서 때론 엄하게 때론 귀하게 키우다 보면 한 아이가 자라는 것이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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