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앞에서도 엄마한테 욕하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성일2019-04-04
“아이가 어느 순간 변하는가 싶더니 이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친구들 앞에서도 엄마인 저한테 함부로 욕을 하고 성질을 부립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아니고 친구들 앞에서 엄마한테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애가 내가 낳아 키운 딸인가 싶어 무섭기도 하고 이렇게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절망스럽습니다.” (A양의 엄마)
“처음부터 엄마한테 욕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열을 받아서 욕을 하게 돼요. 그럼 엄마도 나한테 똑같은 욕을 해요. 엄마가 욕을 하면 내가 욕을 한 것은 잊어버리고 더 기분이 나빠지면서 더 심한 욕을 해요. 잘 못했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A양)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할 욕을 엄마한테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도 지지 않고 딸이 한 말과 똑같은 욕으로 아이에게 되돌려주었다. 아빠는 모녀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엄마의 그 다음 말이 더 무섭다.
“선생님, 애가 저렇게 욕을 해도 돌아서면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요. 애를 너무 사랑해요.”
진정 나를 어지럽게 했던 말이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의 잘못된 말을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잘못된 말과 행동을 부모가 모른 척하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 부모에게 함부로 말하는 아이는 밖에 나가서 어른들이나 선생님에게 경우에 맞는 존댓말을 쓸 수 있을까.
부모의 부름에 아이의 대답이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말대답이 짧아지는 것은 사춘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첫 번째 증상이다. 어렸을 때는 꼬박꼬박 존댓말도 잘 쓰더니 어느 순간 아이의 대답은 “응” “왜?” “그래서?” “싫은데.” “아니. 재미없어.” “알았어.” 더 길면 “내가 알아서 한다고” 정도로 끝나고 있다. 이때 “엄마한테 반말하는데, 바르게 다시 말해봐” 하고 말투를 잡아줄 수 있는 간 큰 부모는 많지 않다. 아이의 반말을 받아주는 것이 친구 같은 부모라고 착각해서 아이를 더 나쁜 길로 나가게 하거나, “그래 너 잘났다. 누구는 그런 성질 없어서 참는 줄 아니. 사춘기가 치외법권이다” 하면서 지나가준다. 엄마가 참아주는 것이 아이를 더 나쁘게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는 1차 사회집단인 가정 안에서 잘못을 판단당하지 않고 바르게 가르쳐주는 최초의 선생님인 부모를 통해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욕을 할 때는 그 이전에 부모에게 반말을 하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거친 말과 행동을 해 왔지만 그때그때 바른 표정과 바른 말로 다시 하라는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부모도 아이도 나쁜 말투와 불만 가득한 행동에 서로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자기가 하는 말은 남이 듣기 전에 자기가 맨 먼저 듣는다. 말은 불쑥 튀어나온 것 같지만 자기의 생각을 거쳐 입과 귀를 통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전달 된다. 그러므로 욕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한 욕을 내가 먼저 생각 하고 나에게 말하고 듣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과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외국에서 1년 동안 홈스테이 한 경험을 말하던 아이가 “그런데 그 홈스테이 주인이 싸가지가 없었어요. 선생님처럼” 하고 말을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는 ‘아차’ 했지만 말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떡하니, 방금 네가 홈스테이 주인과 선생님을 싸가지가 없다고 했는데 네가 그 말을 하기 전이나 네가 그 말을 한 후나 난 바뀐 게 없는데 넌 그 말을 하고 나니 어른에게 아무렇지 않게 ‘싸가지 없다’는 말을 하는 아이가 되었네.” 아이는 그 전에 “말은 바로 그 사람이다. 네가 말하는 수준이 바로 네 인격의 수준이다” 는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내가 한 말을 알아듣고 사과를 했다. 아이가 하는 말 에 상처를 받지 않아야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살리는 ‘말’
아이들은 분위기 때문에, 어울리는 친구들의 말투 때문에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기도 한다. 특히 친구들 앞에서는 더 거칠고 심한 말을 함으로 해서 자기가 ‘쎄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래서 말의 시작과 끝, 중간에 욕을 넣어서 말을 한다. 그 말을 고쳐줄 기회가 가장 많은 사람이 부모다. 선생님이 아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조심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본래의 말투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에서 부모 앞에서는 불쑥불쑥 나쁜 말투로 기분 상하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아이들이 자기를 바르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야 한다. 아이가 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는 부모가 존댓말을 써가면서 아이에게 바른 말을 가르쳤던 것을 생각해 보자. 이제 존댓말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반대로 그 법칙을 깨고 싶은 반항심이 깜박 거리며 드러나는 때가 된 것이다.
몸으로 행동으로 하는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완성시켜주는 것은 말이다. 사랑 하는데 함부로 말하고, 사랑하면서 말로 상처를 주고, 사랑하지만 남과 비교해서 자존감을 무너지게 해선 안 된다. 아이를 죽이는 것도 말이고 아이를 살리는 것도 부모의 말이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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