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던 사람과 헤어졌는데도 힘들어하지 않는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작성일2019-03-12

문 : 스물여섯 된 딸아이가 남자친구와 4년 넘게 교제를 해 왔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계가 깨졌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시작 된 교제라 꽤 깊은 관계로 지내왔었어요. 실연을 당했으니 아이가 많이 우울해 하거나 펑펑 울거나 분노를 터트릴 줄 예상하고 대비 중인데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크게 힘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그게 되레 걱정이 되는 건 저러다 혹시라도 아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해서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 이성교제를 오랫동안 했다면 둘 사이엔 형성된 상호간 관계패턴이 있어 살아오는 동안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래서 그 관계가 깨지는 것은 큰 ‘상실’에 해당하기에 트라우마trauma를 겪게 됩니다. 그 상처를 해결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의사였던 퀴블러 로스는 죽음이나 이별 등으로 인한 ‘상실’을 경험할 때는 부정, 분노, 우울, 협상,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습니다. 꼭 정해진 순서대로 일정한 분량만큼 겪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따님이 보이는 양상은 부정否定의 단계로써, 이성교제가 깨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느끼지 않으려고 그 자체를 축소縮小하고 있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 단계로 보 입니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렵단 뜻입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관계가 깨졌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하고 거기에 따른 자신에 대한 후회와 아픔 때문에 우울에 빠지고, 상대방에 대한 원망 등으로 분노표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가족은 따님이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안전한safety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자녀가 힘겨워하지 않는 듯 보일지라도 “마음이 어떠니? 힘들지 않아?”라고 감정을 읽어주는 방향으로 접근하십시오. 다만 헤어진 원인을 꼬치꼬치 캐묻거나 역전이(정신상담가의 환자에 대한 감정으로 보통 상담자가 본인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나 문제를 환자를 향해 투사하는 것)로 인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어쭙잖은 위로는 삼가시는 게 좋습니다.

문 : 혹시나 아이가 두 번 다시 연애 같은 거 하지 않겠다,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나오면 어떡할까요? 요즘에 주변 친구들의 자녀들을 보면 그러기도 하더라고요. 남의 일이라고 여길 수만은 없는데 말이죠.

답 : 지금 당장은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그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표현된 언행에 너무 초점 두지 마시고 그 뒤에 숨은 마음에 초점을 두십시오. 그만큼 아프고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드니 미래 따위는 생각하기 싫다는 뜻이요 일종의 푸념입니다. 푸념이란 ‘안 한다’가 아니라 ‘하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선뜻 내키지 않거나 힘겹다’라는 뜻입니다. 큰 상실을 겪은 후 생기는 의욕상실이니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푸념은 누군가 충분히 받아주면 지나갑니다. 그래도 사람은 아픔, 적절한 좌절을 통해서 성숙합니다. 이런 일이 따님과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또 아픔 뒤에 부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멘토 역할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연애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사실, 연애라는 개념은 세상문화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 성경에서는 연애를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 즉 혼인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에 있으며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애와 결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 하고 결혼식 준비wedding가 아니라 결혼준비marriage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문 : 딸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생기도록 소개도 해 주고 해서 딸에게 최대한 빨리 남자친구가 생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상처도 빨리 아물고 슬퍼할 일도 빨리 정리될 것이니까요.

답 : 너무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상실에 대한 충분한 애도작업(비애작업) 없이 또 다른 관계를 만드는 것 은 마치 이삿짐도 안 뺀 집에 내 이삿짐을 넣고 들어가는 것과 같아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되어 더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가 앤 율라노프는 우리의 너무 빨리 상처를 봉합하려는 태도가 도리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가 때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진득하게 버티고 있을 때에라야 치유의 불꽃이 발생된다고 합니다. 마치 몸에 종기가 났을 때 성급하게 짜내려고만 하면 아프기만 할 뿐 낫지 않지 만 그냥 그대로 잠시 동안 놔두어 좀 더 곪게 한 후에 빼내는 게 나은 것과 같습니다.
이번 일은 따님이 겪는 성장통이라고 여기시고 가족의 응집력과 사랑을 경험하는 기회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병준 목사
상담학 박사, 파란리본 카운슬 링&코칭, <다 큰 자녀 싸가지 코칭>, <니들이 결혼을 알어?>,
<우리 부부 어디서 잘못된 걸 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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