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의 ‘호프 스프링스’

작성일2021-02-01

지난 연말도 한바탕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가장 큰 오해가 우리 부부는 안 싸우는 줄 안다. 아니다.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잘 싸운다. 어떻게 싸우냐고? 누구는 싸울 땐 반드시 존댓말을 쓰라고 했다. ‘너, 미쳤어? 대체 왜 이래?’ 하며 악쓸 상황을 이렇게 바꾸란다.
“여보, 이성을 잃으면 안 되죠. 별안간 왜 이러는 거예요?” 이 정도면 개콘 수준이다. 또 누구는 싸울 일이 있거든 집 밖으로 나가 무조건 걸으라고 한다. 경험해보면 안다. 이미 열 받았는데 존댓말이 나오나? 더구나 집 밖으로 나갔다가는 영원히 들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부부싸움은 코로나보다 더 지독해서 예방백신도 소용없다. 변종이 하도 많아서다. 답은 하나다. 면역력을 잘 기르는 일이다. 기저질환만 없다면 무증상으로 잘 버텨낼 수도 있다. 비결은 싸움 후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철두철미한 반성문을 쓰는 일이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데이빗 플랭클 감독의 ‘호프 스프링스(Hope Springs)’ 방식의 반성문을 써 보았다

나 : 당신이 하나만 알아줬으면 해요. 내가 우울해질 때면 나에게도 스트레스가 있고 중년의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져만 주세요. 비평이나 분석보다 제게는 공감이 필요해요. 그게 치료니까요.
아내 : 맞아요. 공감능력을 더 많이 키워야죠. 이번에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이제는 당신 마음 어루만지는 일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당신이 힘들 때 우산을 받쳐주기보다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 될게요.

나 : 당신과 약속한 푸드테라피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 대화하는 시간을 늘릴 게요. ‘섞어 여행’이나 휴가, 식사를 더 자제할게요. 식탁에는 오로지 두 사람이 그 리고 여행길에는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게요.
아내 : 1년에 한두 번은 꼭 여행을 갔으면 해요. 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자연 속에서 가족들끼리만 재충전을 갖는 시간요.

나 : 이제 과거의 상처들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볼게요. 당신과 나에게는 지금보다 더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내 : 당신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일정을 좀 더 조정해보도록 할게요. 분주한 중에라도 당신을 최우선으로 할게요.

나 : 내가 과거의 상처들을 떠올려 우울해지거나 당신을 비난할 때면 비평하지 말고 다가와 브레이크를 걸어주세요. 나 역시 연약하여 넘어질 때가 있으니 그 때는 지팡이가 되어 주세요.
아내 : 나한테도 브레이크 장치가 필요해요. 가끔씩 고장 날 때가 있어요. 과거를 들이밀고 편견이 작동될 때라도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접수해주면 고맙겠어요. 무엇보다 여성성의 부드러움을 많이 활용할게요.

나 : 다시는 내가 대화 중 당신을 비아냥대지 않을게요. 특히 ‘회장님’, ‘공주병’이라든지 ‘설친다’는 따위의 말은 절대로 쓰지 않을게요. 더 좋은 말만 할게요.
아내 : 그렇게 말해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나 역시 아버님, 어머님에게 빗대서 당신 약점을 말하지 않을게요. 앞으로 당신이나 나, 둘 다 ‘나 전달법’을 더 많이 사용해서 표현하기로 해요.

나 : 마음에 꾹꾹 눌러 참는 게 내 병인 줄 알고 그 때 그 때 내 의사를 표현할게요. ‘아이처럼 울고 어른처럼 일어서자’는 내 삶의 모토를 더 진지하게 실천해 볼게요.
아내 : 시도 때도 없이, 상황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지금보다 더 많이 조절할게요. 부부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이야기든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일 여유 공간을 제공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도록 할게요.

나 : 어떤 경우에도 난, 당신의 의견을 가장 먼저 존중하고 당신이 한 일에 대해 더 적극적인 지지와 칭찬을 많이 할게요.
아내 : 고마워요. 나 역시 당신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게요.

나 : 당신이 계획된 일을 쉽게 번복하고 뒤집기를 해도 과거와 연결 짓지 않고 개별사건으로 취급하며 그 때 그 때 상황만 다루도록 할게요.
아내 : 제일 고맙죠. 저는 약속을 보다 신중하게 할게요. 그리고 서로의 일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점검해서 이중 스케줄로 당신을 외롭게 하지 않을게요.

나 : 아이들이 있고 없고를 떠나 당신에게 더 많은 친밀감을 보여주도록 스킨십을 나눌게요.
아내 :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받아줘서 감사해요. 차가움이 아닌 따뜻함으로 친밀감을 배양해 갈게요.

나 : 너무 많은 약속보다 이 몇 가지를 당신께 고백하며 그 때마다 실천된 것은 지우고 갱신을 해 갈게요. 어느 날, 당신에게 ‘멋진 사람’보다 ‘값진 사람’이 될게요. 당신을 사랑해요.
아내 : 이토록 부족함 투성이인데도 한평생 김향숙 한 여자만을 사랑해온 당신을 존경합니다. 받은 사랑 더 많이 나누고 표현할게요. 사랑하는 두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부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행복명가를 이어가고 싶고요.

안 싸우려고 노력하다 병 만들지 말고 한바탕 싸워라. 싸운 다음 쓴 반성문을 현관에 써 붙여 보라. 영화 섭외라도 있을 줄 어떻게 알겠는가?†



송길원 목사 | 가족생태학자,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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