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가족

작성일2020-12-01

코로나19와 가족

“전 정말 아빠랑 매일 싸우고 삽니다. 아니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욕을 먹는 거죠. 아빠는 욕을 하면서 뭐가 불만이냐고 묻습니다. 또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뭐냐고 합니다. 전 아빠가 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데 뭘 안 해줬냐고 화를 냅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욕을 물 쓰듯이 합니다. 부모님이 욕을 할 때마다 욕이 오만 원짜리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가 틀린 말을 해서 짜증이 난 게 아니라 맨날 똑같은 일에 똑같은 말을 듣다 보면 욕을 섞어서 대답해야 내가 엄마를 이긴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있고 싶다가도 식구들이 나 없는 곳에서 자기들끼리 웃으면 내 흉을 보는 것 같고 나만 왕따 시키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요.”

전 세계 사람들은 예약자 명단에 없는 한 명의 손님을 어떻게 쫓아낼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중국의 한 도시를 휘젓고 다닌 무용담 정도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은 2만5천대의 비행기가 떠있던 하늘 길을 닫았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1천군데의 관광지를 죽고 싶지 않다면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이름표를 바꿔 놓았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군중 속의 고독’이니 뭐니 폼 잡지 말고 내 집에서, 내 방에서 서로 아는 사람들의 숨소리만 듣고 살라고 합니다.
“어떻게 감히 맨 입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있어.”
맨 얼굴로 엘리베이터라도 타면 사람들은 눈빛으로 묻습니다. 지금은 마스크로 가리지 않은 코와 입이 공공의 적이 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안에서 이단 옆차기를 당해도 ‘맨 얼굴로 맞을 짓을 했네’ 하는 침묵의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내가 숨 쉬고 말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숨겨야 합니다. 내가 뱉는 숨결도 맨 숨은 안 되고 한 꺼풀의 여과장치를 거친 후에 내 뱉으라고 합니다.
맨 입으로 말하고, 재채기를 하면서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은 내 집, 내 가족들뿐입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신발도 벗기 전에 마스크부터 벗습니다. 마스크를 벗었다고 편하고 가까워진 것은 아닙니다. 핸드폰을 들고 들어간 방은 집안에 각자의 동굴을 파주었습니다, 수업을 듣는다고 24시간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가 있는 아이 책상은 부모와 학교의 동의를 받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놀이기구가 설치된 놀이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의 호흡과 말에 2020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독소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독은 처음엔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달콤함마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콤함은 시나브로 빠져 나가고 이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가까운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주는 아픔은 경고등을 켜지 않습니다. 처음엔 수세미로 맨 마음을 한 번 쓰윽 스치는 정도의 까칠함입니다. ‘이게 뭐지?’ 했다가 같은 자리를 계속 스치다 보니 물집이 생기고, 쓰린가 싶더니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찌르는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날마다 같은 일로 같은 말을 듣다 보면 그 자리엔 멍이 들고 곪으면서 붓기 시작합니다. 이웃이 알만큼 주먹을 쓰는 폭력은 아닙니다. 본인만 남모르는 통증을 느낍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말로 주고받는 상처가 그렇습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손가락으로 그냥 슬쩍 민 거야. 민감하긴.” 책임은 나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뭐 없는 말 했어. 틀린 말 한 게 아니잖아. 당신이 그런 것 남들도 다 아는데 새삼스럽게 왜 시비를 걸고 그래.” 나는 아픈데 상대는 나를 시비나 거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맞습니다. 별 일 아닙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란 굴레,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평생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이젠 가만히 둬도 저절로 아픈, 오래된 아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똑같은 말로 똑같은 무게의 돌을 던졌지만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소리 지르게 된 것입니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난 늘 하는 말인데 오늘 갑자기 화를 내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상대는 아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 말 습관이 상처가 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말 습관, 그게 가까운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나의 말 습관부터 돌아보자
아이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꼬아서 기분 나쁘게 하는 말로 바꿔버리는 엄마의 말 습관에 마음이 사막처럼 되어버린 아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해도 엄마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엄마를 무시하는 말과 행동으로 자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기, 엄마가 좋아하는 일은 하고 싶어도 하지 않기, 엄마가 열을 내면 그 일은 더 자주 하기. 아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늘 아이를 무시하고 비꼬는 말로 아이를 격려한다고 생각한 엄마의 말 습관이 만들어낸 아이입니다.

돈이 되는 이야기, 돈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아무 관심이 없는 남편, 돈 외에 딱 하나 관심을 갖고 하는 말은 시어머니 이야기. 그런 남편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는 아내가 있습니다. 평생을 참는다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이젠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내는 음식 씹는 소리도 듣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칼 들고 싸우는 부부가 아닙니다. 겉으론 잔잔하고 여유롭습니다. 그런데 한 꺼풀만 들어가면 똑같은 말로 평생을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족은 같이 살기 때문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빛만 보고도 마음의 형편을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남을 대할 땐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내 마음관리도 하면서 말을 하는데 가족의 어두운 얼굴빛은 ‘으레 그러려니’ 묻지도 않고 재미없는 얼굴로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고맙고 미안한 것은 내 마음으로 느꼈으면 됐지 식구 사이에 그걸 꼭 말로 해야 돼?” 이렇게 생략하고 있지는 않나요? 식구들한테까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힘드냐고 말하고 싶나요? 마음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가족 안에서 그 작은 순간들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알아서 먼저 나를 받아주면 되잖아’ 하는 일상에 ‘왜 당신은 나를 먼저 알아주면 안돼?’ 하고 질문하기 시작했을 때 그 당연한 질문이 삶을 휘청거리게 합니다. 갑자기 인생이 말을 걸어오면서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코로나19는 가족끼리 어떻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예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 알아보는 숙제를 하라고 합니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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