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명확한 언어가 아이의 기준을 만든다

작성일2020-11-01

사람마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고 그리워지는 장소가 있다. 어떤 나라일 수도 있고, 도시일 수도 있고, 특별한 장소일 수도 있다. 호주 시드니는 나에게 외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편안함이 있는 도시다. 도시마다 그 도시만의 소리와 색, 독특한 향기가 있다. 시드니는 유칼립투스의 진하고 상큼한 향기를 품고 있다. 깊이를 모르는 푸른 바다, 지천으로 널린 초록의 나무들, 키가 낮은 빨간 지붕이 순하게 어깨를 맞추고 있는 도시다.

호주에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어려움은 운전이다. 호주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좌회전 우회전 하는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산한 거리에서 별 생각 없이 반대 차선으로 꺾어 마주 오는 차와 대면한 경험이 몇 번 있다. 처음엔 “왜 저 차들이 내 차선으로 오느냐”고 큰 소리쳤다. 운전석의 차이는 눈에 띄는 차이다.
T자형 삼거리에서 큰 차선으로 끼어들어야 하거나, 복잡한 거리에서 차선을 변경하려고 방향등을 켠 차를 보고 한국에서처럼 ‘어디 내 앞으로 끼어들려고, 끼어들지 마’라는 표시로 쌍라이트를 깜박거린다. 호주 사람은 양보하는 줄 알고 차선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접촉 사고가 난다. 같은 사인이지만 다르게 해석해서 생긴 사고다. 호주 사람들은 양보할 때 쌍라이트를 켜서 깜박거린다.

학교에 적응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앞에선 아이는 한국에서처럼 고개를 푸욱 숙이고 얌전하게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공손한 태도가 호주 선생님에게는 불손한 반항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른과 대화할 때는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해야 당신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뜻이 된다.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는 것은 “선생님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라는 의사표현이다. 선생님의 꾸중을 듣는 상황에서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는 태도까지 추가되는 것이다.
멀리 있는 친구를 부르는 손짓도 다르다. 우리는 “빨리 와” 하고 부를 때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위아래로 손을 흔든다. 이 손짓이 호주에서는 “오지 말고 가라”는 뜻이다. 반대로 빨리 오라고 할 때는 우리가 개나 고양이를 부를 때처럼 손바닥은 얼굴 쪽으로 하고 손가락을 위로 향해서 손짓을 한다.
사람 사이에서 문화가 다르면 같은 몸짓도 다르게 읽힌다. 같은 나라의 국민, 가족 사이에서도 많은 몸짓과 말이 다르게 읽히고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차이가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확한 전달이 필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주고받는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부모와 듣는 자녀가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다르다. 코로나19 덕분에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가 켜진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다 곧잘 엉뚱한 곳으로 빠져든다. 잠시 다른 창을 열어 잠깐 게임을 하고 돌아오려다 몇 시간이고 게임에 빠져서 수업 출석을 놓치거나 선생님이 찾는 전화를 받는다.

코로나 시국으로 십대들의 게임 시간이 평소보다 배 이상이 늘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 유튜브를 서핑하는 것은 시간을 죽이는 문제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야동’이나 음란 사이트를 선택해서 들어간 아이들의 문제는 시간을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정신세계에 해독되지 않은 독극물이 스며드는 것과 같다. 부모가 좀 더 정확하고 확실한 언어로 아이들의 온라인 상태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졌다.

야동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적당히’ 하라는 말로 필요한 교육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예 금지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풀어놓은 것도 아니니 부모로서 잘 대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듣는 아이들의 해석이 문제다. 부모가 ‘적당히’ 하라는 말을 아이들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날마다 몇 편씩 야동을 보는 아이에게 ‘적당히’ 보라고 하면서 부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이는 어차피 부모도 알고 있으니 들키지 않고 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야동이나 음란 사이트는 실수로라도 열어보지 말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게임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친구들하고 말이 안 통한다고 하면 내 아이가 게임을 못해서 왕따가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한다. 그래서 제재하는데 망설인다. 부모가 24시간 아이를 감시하고 돌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게임을 하는 시간은 3일에 1시간이나 어느 요일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로 규칙을 정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가 다른 시간에 게임을 할 때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집에만 있으니 저녁에 한 시간 정도 부모와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핸드폰이 아이들 손에 들리고 나서부터 아이들의 운동능력이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규칙적인 한 시간의 산책은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을 맑게 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일단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시드니에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을 몇 달 맡아서 공부를 시킨 적이 있다. 평균 체중이 30kg 정도 웃도는 아이는 공부하는 습관도 없었지만 걷는 것은 엄마가 1km 걷는데 만원씩 준다고 해도 싫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 해가 지면 둘이서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 산책을 했다. 하루 20km 정도 걷는 것을 목표로 하여 걷다 보면 공부할 때는 하지 않았던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걷는 것이 익숙해지고 몸의 변화도 느껴지니 산책 시간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찾아보면 한 시간 정도는 도로를 걷지 않고 골목길이나 공원을 따라서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여기저기 많다. 학교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지만 지금은 한 시간의 산책이 충분히 가능하다. 걸을 때는 서로 따로 이어폰을 빼고 귀도 열고 마음도 열고 드문드문 이야기도 하면서 걷는 것이 좋다. 하루에 쌓인 피곤이 날아가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한강과 샛강을 따라서 도는 여의도 한 바퀴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면서 10km 정도, 1만2000~1만3000보 거리다. 복잡한 생각이 시나브로 빠져 나가고 나중엔 아무 생각 없이 기분 좋은 피곤을 안고 돌아올 수 있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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