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기도/월터 브루그만 지음/박천규 옮김/비아

작성일2021-01-26

종교개혁자 장 칼뱅(1509~1564)이 신학교에 정착시킨 유구한 전통이 하나 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기도하는 것이다. 보통 교수는 하나님이 자신과 학생을 인도해주기를, 성령이 가르침을 전해주길 기도한다. 신학 수업은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실천하고 고백하는 장이 돼야 한다는 확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책은 이 전통을 41년간 실천한 저명한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수업 전 했던 기도를 간추린 것이다. 1968년부터 미국 에덴신학교와 컬럼비아신학교에서 구약학 교수를 지낸 저자는 책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전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적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탁월한 설교가로 수많은 설교집을 펴낸 목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신학교에서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지만, 전통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도는 우리가 얻을 지식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라며 강의 전 기도를 기도서로 묶어낸 이유를 설명한다. 기도서를 펴낸 다른 이유도 있다. “오늘날 교회 예배에서 드리는 공적 기도가 어설프고 조악한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저는 공적인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가 예술적으로 탁월한 기도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술적으로 탁월한 기도는 미사여구가 많은 기도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관심을 드높이고 이를 유지하게 해주는 기도입니다.”

이번 책에 실린 기도문 역시 정제된 언어로 성경 속 상징과 작금의 현실을 시처럼 엮어내는 그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우리가 자신하며 서 있던 모랫구멍에서 우리를 건져내소서. 은혜로 가득한, 좁고 어려운 길로 이끄소서. 자비와 위로와 정의의 반석인 당신을 닮게 하소서. 이웃의 기댈 곳이 되는 당신을 따라 우리의 생각과 삶이 타인을 향하게 하소서.”

신학생이 수업 중 하나님을 연구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그분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더 알고자 겸손히 노력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기도도 나온다. “주님, 우리는 당신을 연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연구 대상이 되는 건 일시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살피고 검증하고 뜯어보고 따져서 알게 되는 것은 당신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아시듯 우리도 조금이나마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미국에서 출판된 원서는 저자가 컬럼비아신학교에서 은퇴한 지 2년 뒤인 2003년 출간됐다. 18년 전 나온 저자의 기도가 당대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마음에 공명하는 건 현재 인류의 상황과 겹치는 내용의 기도가 적지 않아서다. 책에는 전 세계를 뒤흔든 2001년 9·11 테러 이후 저자가 남긴 기도문이 서너 차례 등장한다. “오늘(9월 11일)처럼 당신의 주권에 기대고 싶은 날에, 당신이 친구일 뿐 아니라 주님이라는 사실에, 우리를 위로하지만 침묵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주님 고백하건대 당신은 우리 주님입니다.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되뇌며 당신께 간신히 매달립니다.”

94년 르완다 대학살과 99년에 발생한 코소보 전쟁과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고교 총기 난사 사건 등 시대의 아픔을 거론하며 “주님,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오염된 숲과 호수에, 온갖 차별과 혐오가 도사린 도시에 오소서”라고 간구한다.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1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CNN은 “9·11 테러 때보다 수백 명 더 많은 사람이 매일 미국에서 숨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 역시 3차 대유행으로 매일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온다. 나의 아픔이 전 세계 사람의 상처와 잇대지는 시기다. “기도를 듣는 각 구성원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받아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창한 저자의 기도서를 읽으며 코로나시대에 신앙인이 드려야 할 기도의 방향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75103&code=23111312&sid1=mcu&sid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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