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버지’ 고 송재호 장로의 삶과 신앙

작성일2020-11-13

‘국민 아버지’라 불리며 아버지의 품 같은 온기를 전한 배우는 하나님의 품으로 향하며 그의 미소만큼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고 송재호(83·사진) 오륜교회 장로의 천국환송예배가 열린 10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엔 떨기나무 불꽃처럼 꺼지지 않았던 그의 신앙과 연기 인생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성도들이 모였다.

예배를 집례한 김은호 목사는 30여년 고락을 함께하며 신앙을 나눈 순간들을 돌아봤다. 그는 “송 장로님은 1990년대 초 상가교회 시절부터 오륜교회 공동체의 기틀을 닦았고 교회가 힘들 때마다 앞서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같이 집을 보러 다닐 때, 병환으로 1년 넘게 요양원 생활을 하실 때도 기도와 특유의 엷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고 덧붙였다.

청년 송재호는 주머니마다 부적을 넣고 다니고 부정 탄다며 교회 다니는 사람을 멀리했을 정도로 기독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연기자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빚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려 세 차례나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1980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만난 지인의 전도로 처음 신앙에 눈을 떴다.

1년에 한 번씩 1000만원짜리 굿을 하던 아내의 회심은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결정타였다. 송 장로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귀신을 섬기고 염주를 붙들고 살았던 아내가 어느 날 ‘꿈에서 분명 예수님을 만났다’며 빨간색 성경책을 가져왔다. ‘나한테 교회 가자고 하면 죽을 줄 알라’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속으론 하나님이 날 만나주시려고 아내를 통해 성경책까지 보내셨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고 고백했다.

신앙 여정 중 큰 아픔도 겪었다. 2000년 1월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큰 충격을 받은 송 장로는 대사 두 줄도 외우지 못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빠졌지만 “아들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예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 증인으로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를 늘 묵상하며 살았다.

송 장로와 함께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은 TV와 스크린이 아닌 교회 곳곳에서 보여준 그의 아버지 같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송양옥(57) 권사는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김은호 목사님과 나란히 서서 성도들과 악수도 나누고 때론 안아주시기도 했는데 그때의 인자한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겐 ‘국민 아버지’로 불릴지 모르지만, 성도들에겐 ‘영적 롤모델’이었다. 장로님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울먹였다.

전도부 담당 금경연 목사는 “대중에 알려진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신앙이 널리 알려지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는데 장로님은 전도지나 브로슈어에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만큼 교회를 통해 영혼이 구원받는 일을 기뻐하셨다”고 회상했다.

김 목사는 “송 장로님은 온몸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만을 구하는 삶을 살아오셨던 분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이제는 남겨진 우리가 그 모습을 기억하며 천국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전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4487&code=23111321&sid1=mcu&sid2=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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