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진 원로목사 간증

작성일2021-10-19

이상진 신정중앙교회 원로목사.

초등학교 3학년 때 전도를 받아 교회에 처음 출석했습니다. 6·25 전쟁 통에 교회를 다니지 못했지요.

청년 때 다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해 성령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피 흘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주위에서 신학을 하라고 권유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신학을 할 수 없었습니다.

1966년 미국 출신 버나드 선교사를 부흥회에서 만났습니다. 버나드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주의 종이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서울로 올라가 버나드 선교사와 함께 경기 파주군 천연면 법원리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일주일간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다 버나드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천막을 구입해 천막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어린이 약 30명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찬송을 가르치고 성경도 가르치면서 교회가 부흥했요.

어린이들과 함께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린이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버나드 선교사가 천막교회를 방문해 교회학교 부흥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 교회가 법원리교회입니다.

1969년 경기 연천군 군남면으로 이동해 교회를 또 건축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월곡리 의당교회에 부임해 가난한 농촌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섬겼습니다.

이때 큰 아들 이성주(현 목회자)를 출생하고 1974년도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수촌리 태실교회로 부임해서 주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삽화=국민일보 그림창고.

1977년 충남 공주군 신풍면에서 조평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1978년 전북 정읍시 신정동 신정교회로 부임했습니다.

신정중앙교회로 개명후 1981년도의 교회를 신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회 재정이 부족해 교회 건축을 중단했습니다.

위기였지요.

1982년 2월에 금식을 하고 강단에 올라 예배를 드렸는데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며 '기도하라'고 하시며 '기도하러 나가라'고 하셔서 성경 말씀을 들고 기도하러 무작정 전북 정읍역으로 떠났습니다.

성경 마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는 그런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충남 공주 태실교회에 있을 때 인풍산기도원에 강사로 오신 분이 수원 칠보산 기도원에서 20일 금식기도를 하셨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무작정 수원역 기차표를 사서 칠보산기도원으로 가서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순교를 각오하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금식기도 28일째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가 심한 현기증으로 넘어져 머리에 피가 많이 흘러 다쳐 의식불명이 됐습니다.

조금씩 회복했습니다.

금식기도 38일째.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는 중에 나라를 위해 구국 기도를 하고 계시는 연세드신 전도사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상담했습니다.

안수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한번도 안수기도를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 받친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내려 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40일 금식기도를 마칠 때 교회에서 청년 두 명이 와서 나를 부축해서 신정교회로 왔습니다.

그들은 송장 같은 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신정교회를 신정중앙교회로 명칭을 바꾸고 1982년에 교회 준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1983년도 강한 태풍 때문에 교회가 다시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적대적이었던 마을 주민들이 교회가 무너진 모습을 보고 적극 도와주면서 위로와 격려를 해주어 교회를 완공습니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1983년 교회가 완공됐습니다. 기적입니다.

신정중앙교회는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올린 교회입니다.

신정중앙교회를 비롯해 제 생명을 바치며 목회했던 농촌의 7교회는 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신 그날까지 잊을 수 없는 교회입니다.

저는 이제 만 83세입니다. 부끄럽지만 32년간 목회 역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장 7~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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