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대담

작성일2021-06-22

김형석(오른쪽)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2030 청년들을 응원하고 한국교회가 청년세대를 끌어안기 위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코로나19로 이 시대 청년들은 더 힘들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어렵다. 수십억원씩 하는 집은 언감생심,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특권이 판치는 말뿐인 ‘공정사회’에 좌절한다. 희망은 없고 고통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끌’해서 주식과 비트코인에 열을 올리며 일확천금만 노린다. 한 세기를 살아낸 101세 철학자와 미국 하버드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목회자가 되려다 가업을 이어받은 대기업 회장은 젊은세대에 어떤 말을 들려줄까.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석학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영훈(69) 대성그룹 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김 회장은 덕수교회 장로다.

사회=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20~30대 청년들이 희망이 없다 보니 주식과 비트코인 광풍에 휩쓸리고 있다.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

△김 교수=내가 보기엔 젊은이 가운데 3분의 1은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안 해도 자기 인생을 잘 개척할 것이다. 또 다른 3분의 1은 기성세대와 서로 대화하며 동행할 것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기성세대가 모범을 보여주며 도움을 줘야 하는데 모범도 도움도 못 줬으니 그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한다. 지도층이 사회정의를 말하는데 가만 보면 네 편, 내 편을 따진다. 요새 여론조사를 보면 ‘내로남불’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젊은이에게 아주 미안하고 부끄럽다. 가난한 건 이길 수 있어도 정의가 무너지면 살 수 없다.

△김 회장=성경에 보면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가 17세이고 애굽 총리에 올랐을 때가 30세였다. 다니엘도 사악한 바빌론 정부에서 교육을 받고 총리에 올랐다. 둘 다 최악의 조건에서 살던 젊은이였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이 참 중요하다. 2015년부터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럴 때일수록 청년들이 하나님께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100년 넘게 사신 현자로서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김 교수=젊은 날의 희망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연세대에 교수로 갔을 때가 30대 중반이었다.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필리핀 국민소득이 100달러인데 우리도 그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올라온 건 민족의 저력이고 우리의 힘이다. 지금 조금 시련을 겪고 있으나 그 힘이 없어진 건 아니라고 본다. 나는 젊은이가 또래 중에서 모범을 찾았으면 좋겠다. ‘같은 2030이지만 저 사람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많이 나와야 한다. 나는 중학생 때 윤동주 시인과 한 반에서 공부했다. 나보다 3살 많았던 윤동주는 ‘나는 시인으로 살다 죽는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홍창의 박사 역시 중학생 때부터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중학교 선배인 황순원 작가도 ‘이담에 소설가로 살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이들에게 자극받아 나도 중학교 4학년 때 철학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김 회장은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 회장으로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함께 청년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응원하자는 취지의 ‘갓플렉스(God Flex)’ 행사를 제안했다. 작년엔 새문안교회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올해 11월 19일엔 광림교회에서 열린다.

△김 회장=우리 청년이 멀리 보는 시각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안했다. 제가 2016년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이 됐는데 예전 같으면 상상 못할 일이다. 인종차별이 있어 아무래도 모임이 유럽인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무대로 가 보니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원자력을 비롯해 세계 에너지 산업계에서 한국이 선두에 서 있다. 에너지 분야를 보며 느끼는 것이 1·2차 산업혁명 둘 다 에너지 혁명을 기폭제 삼아 일어났고 그 중심에 기독청년이 있었다. 1차 산업혁명으로 ‘팍스 브리타니카’(영국에 의한 세계평화)가 이뤄졌고, 2차 산업혁명으로 ‘팍스 아메리카나’가 완성됐다. 우리 청년 특히 기독청년이 영감을 갖고 세계로 나간다면 ‘팍스 코리아나’가 이뤄질 것이란 확신이 든다. 갓플렉스가 기독청년이 멀리 보고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청년들이 하나님을 만나 꿈과 희망을 품는 게 중요하지만, 현재 국내 기독교인은 줄고 있고 젊은층은 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김 교수=한국 기독교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14살 때부터 교회생활을 해 왔는데, 중학교 4학년쯤 되니 평양 어느 교회나 설교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고 느꼈다. 그러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들었는데 여타 목회자 설교와는 달랐다. 고당 조만식 장로의 글과 생각, 행동 역시 목회자보다 수준이 높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예수는 이 세상에 계실 때 교회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 나라를 말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전부 교회로 시작해 교회 이야기로 끝난다. 세계 일주 중 접한 서구교회의 현실을 보면서도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교회에 성도가 많이 모이지만 유럽 국가처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수가 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도 교회에서 배울 게 없어지니 점차 떠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회가 기독교의 전부라는 ‘교회주의’에 있다. 교회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과정이다.

△김 회장=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교회를 깊이 볼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이 교리·교권·교회주의를 지적했는데 저는 그걸 현장에서 목격했다. 모든 걸 버리고 주님의 일을 하러 왔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목회자 준비를 할 때보다 회사 경영을 돕는 동안 하나님의 동행을 더 실감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번성하면 하나님이 아닌 사람 중심이 된다. 이걸 바로잡는 게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 가운데 평신도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교수님은 어느 강의에서 열네 살 때 인생의 한계를 느끼셨다고 했는데.

△김 교수=어릴 때 친구와 뛰어놀다가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삶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중학교 진학 전인 14세 때 ‘다른 이들처럼 건강을 주시면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다. 조건부 기도를 한 것이다. 그때 기도를 그대로 이뤄주셔서 중학교도 가고 지금껏 일하고 있다. ‘오래 살아서 일 좀 많이 해봐라’ 하는 게 아닌가 싶다.(웃음)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며,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김 교수=누군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해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나 자신을 위해 성실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대할 때 인생이 행복해진다.

△김 회장=하나님이 주신 영생이다. 모태신앙이라 내게 주어진 영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간 잘 몰랐다. 돌이켜보니 은혜로 허락된 영생이 참 귀하다는 걸 알았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김 교수=대학 졸업할 때쯤 학도병 징집으로 고통스러울 때 받은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인생의 전환을 가져온 말씀이다.

△김 회장=‘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다. 80세까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팍스 코리아나’를 이룩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 이를 위해 요즘 일할 때는 말씀으로 선별한다. 마음의 안식을 흔드는 건 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짐은 가볍고 우리 몸에 맞는 멍에를 주신다. 앞으로 주님이 허락한 안식 안에서 풍성한 열매 맺는 10년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교수님은 얼마 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만나셨다. 내년 대선에서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까.

△김 교수=지금은 누구도 생각을 못 하고 있다. 단지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을 제일 원하고 있다.

△김 회장=지도자를 생각하면 성경 속 고레스가 떠오른다. 유대인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사야서 45장에 ‘나의 기름부음 받은 고레스’로 기록됐다. 어떤 분이 대권을 잡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으면 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96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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