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년’ 15세 원기의 꿈과 희망

작성일2020-12-13

홍원기군이 지난 3일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행복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시간을 달리는 소년’ 원기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매 순간 의미를 찾으려는 절박한 삶이 아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행복만으로도 감사하다.

때로 죽음의 두려움이 닥쳐올 때면 혼자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 원기는 ‘나도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 꿈꾸며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했다. 다음은 원기와 나눈 일문일답.

-프로제리아 신드롬(소아조로증)이라는 걸 언제 알게 됐나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저를 보고 외계인이라 놀렸어요. 저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통해 ‘나는 친구들과 조금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심정이 어땠어요.

“저는 절망하지 않았어요. 조금 소심해졌을 뿐이죠. 학교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 때면 ‘혹시나 놀림당하진 않을까’ 싶어 모자를 눌러 쓰고 다녔어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항상 제 편이 돼 주시는 부모님, 저를 대신해 싸워주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프로제리아 환자여서 가장 불편한 건 뭔가요.

“키가 작은 것, 머리카락이 없어서 가끔 머리에 상처가 나는 것, 관절이 뻣뻣해 허리를 잘 숙이지 못하니까 혼자 양말을 신기 어려운 게 가장 불편해요. 그래도 올해 키가 120㎝가 됐어요. 이전에는 놀이동산에서 키 제한에 걸려 친구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지 못했거든요.”

-그럴 때는 하나님이 원망스럽진 않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수영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저를 처음 본 다른 학교 친구들이 놀렸어요. 대부분은 저를 봐도 수군대고 가는데 그때 만났던 친구들은 정말 나빴어요. 끝내 사과도 없이 가더군요. 그때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나를 왜 이렇게 만드셨느냐’고 불평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희소병을 가졌지만, 원기군은 늘 밝고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병 때문에 고민하기보다 제게 주어진 하루와 일상을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소중함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부모님의 사랑이 감동으로 다가왔을 때가 있었나요.

“줄기세포 치료를 했을 때 아빠 몸에서 지방을 뽑아 제 몸에 주입해야 했어요. 아빠가 2차 시술을 받았을 때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시술실에서 나온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저를 껴안아 주셨어요.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날 가족이, 부모님의 사랑이 뭔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친구들하고 노래방 갔을 때, 바다에서 수영할 때,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했을 때입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와 달리 게임 속 캐릭터는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니까요.”(웃음)

-원기 군에게 하루는 어떤 의미일까요.

“제게 하루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맛있는 것 먹는 겁니다. 저는 하루가 늘 즐겁고 신나고 감사해요.”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울 때는 없나요.

“‘프로제리아 환자들은 일찍 죽는다는데 나도 그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슬퍼서 혼자 울 때도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해준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엄마가 ‘너는 행운아야. 너에겐 좋은 친구도 있고 줄기세포 치료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라고요. 지금은 이 병을 극복하겠다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원기군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항상 제 옆에서 저를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시며 제게 힘이 돼 주시는 분입니다.”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예수님, 제 머리카락 엄청 많이 나게 해주세요. 아니면 예수님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제게 주세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천국 가서 머리카락이 생기면 저도 염색을 꼭 한번 해보고 싶거든요.”

-또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행복한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와 달리 친구들에겐 허락된 시간이 많잖아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보고 부모님이 강요하는 게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기도 제목이 있나요.

“‘유튜버를 계속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시고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돼 사람들이 소중한 일상을 되찾고 저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머리카락 갖기, 여자친구 만들기, 배우 김다미님 만나기, 유튜브 구독자 100만 되기, 아빠랑 영국에 가서 손흥민 선수 경기를 보며 응원하기요.”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8587&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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