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히트곡 제조기 김정택 장로

작성일2020-02-06

가수 패티김과 함께 제8차 세계한상대회 폐막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김정택 장로의 모습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 인가봐’, 현숙의 ‘정말로’, 심수봉의 ‘미워요’….

1980년대 한국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이들 히트곡의 작곡가에 대해서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SBS관현악단 단장을 지낸 김정택(70) 장로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히트곡 제조기’라는 닉네임을 가질 정도로 날렸던 그는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작사 작곡 편곡까지 포함해 수록된 곳이 320곡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1991년 SBS 개국과 함께 SBS관현악단 지휘자로 취임한 김 장로는 동계아시안게임, 부산아시안게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2002월드컵 전야제 등 다양한 국가행사에서 개폐회식 음악의 작곡·편곡자로 활동한 한국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이런 공로들로 2003년 대통령표창과 2018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김 장로가 좀처럼 외부활동을 절제하는 듯한 가운데서 꾸준히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무료연주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군부대를 비롯해 병원, 대학,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에서조차도 그는 명분만 있으면 무료공연을 마다하지 않고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코너에서 25회에 걸쳐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연재했던 김 장로는 그간의 침묵에 대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조용히 지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정택 장로는 전국을 순회하며 명사특강 강사로도 활약 큰 인기를 얻고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군부대를 비롯해 원하는 곳이 있으면 내 음악 재능을 기부하는 봉사활동도 다녔다. 그러면서 가끔 교회나 선교단체 등에서 부르면 가서 찬양도 하고 간증도 하고 있다.”

-수많은 명곡을 만들었는데 그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

“지금까지 만든 많은 곡들을 만드는 과정과 그 곡들을 가수들에게 주는 과정에는 각종 재미있는 일화들이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절묘한 사연들이 많다.

나의 음악 재능은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선물은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이런 생각이 오히려 영감을 더 주고 좋은 곡들을 만들게 해준 것 같다.”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말해 달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이후에 대구로 피난 갔다가 9·28 서울수복 때 다시 상경해 서울로 올라왔다. 8살 되던 때에 아버지가 피아노를 사주셨는데 이때부터 피아노를 치다보니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다. 배재중학교를 거쳐 서울예고에 들어가서 트럼펫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예술계에 머물렀던 것 같다.

아버지는 평양 출신으로 미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건성으로 다녔다.”

-서울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작곡과 지휘를 택하게 된 동기는.

“부전공으로 이남수 교수님에게서 지휘를 전수받았다. 내가 애교가 많았는지 정말 선생님에게 이쁨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셔서 다시는 볼 수 없지만 대학 다닐 때와 졸업 이후에도 계속 찾아뵈면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쌓았었다.”

-신앙생활에 결정적 계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떤 것인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대중음악 연주가 겸 작곡자, 지휘자로 방송계와 밤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가수 심수봉씨와 안면 있는 여자 전도사가 찾아와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하면서 가버렸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불쾌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 일찌감치 운전을 하고 집으로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오면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차를 세워놓고 “주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하며 울부짖었다.

그날 집에 와서 밤을 새워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며 토해냈다. 새벽이 되고 어두움이 물러가면서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감사가 넘쳤다. 이후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김정택 장로가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고 있다.

-음악과 관련한 앞으로의 다른 계획이 있는가.

“나는 ‘돈 벌어서 남 주자’는 주의다.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님께 양육과 은혜를 받았다. ‘돈 벌어서 남에게 주자’라는 것 또한 김 목사님의 설교에서 감명 받아서 갖게 된 생각이다. 가난한 어린아이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내 재능을 물려주고 싶다.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을 제작한 것도 이런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청소년들에게 자주 “너는 믿음으로 행동을 보이고 나는 행동으로 내 믿음을 너에게 보여주겠다”고 말해 준다. 행함이 없이 제대로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여줘야 누군가가 변할 수 있다. 이런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진리이신 예수님의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눈물이 많다고들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절절히 깨닫고서부터 신체구조에 특이한 현상이 생겼는지 눈물이 많아졌다. 성경을 읽으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찬양을 하면서 수시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아내는 내게 ‘고장 난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 때문에 난처할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눈물이 쏟아질 때는 참으로 곤란하다. 앞에서 지휘봉을 잡고서 대원들의 찬양을 이끌어가다 보면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면서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으로 70세가 된 연세에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내 삶의 행복지수는 엄청 높다. 오버한다거나 가볍다는 말도 종종 들었지만 ‘그 사람 진짜구나’라는 말을 나중에는 듣게 만드는 게 내 매력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 삶에 유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자’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오늘도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소원은 무엇인가.

“언젠가부터 하나의 비전을 품고 있다. 최고의 영성과 실력을 갖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열방을 누비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윗이 한 손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다른 한 손에 물맷돌을 들고 나가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 한 손에 복음을, 다른 한 손에 최고의 찬양단으로 악의 세력들을 깨부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리하여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정택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1145&code=23111321&sid1=mcu&sid2=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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