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농어촌교회

작성일2020-11-25

산골이든 어촌이든 논두렁 밭두렁 지나 사역 현장 곳곳에 달려가 귀한 동역자의 손을 잡는 게 하나님께로부터 맡겨진 사명이다. 지구촌을 발칵 뒤집어놓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도 농어촌 순회선교 길을 막지는 못한다. 고된 길을 소명으로 찾아가지만, 코로나가 할퀴고 간 그 길목에서 전에 없던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얼마 전 떠난 순회 길도 그중 하나였다.

“목사님, 더 나빠질 게 없습니다. 도시 사는 자녀들이 농어촌에 계시는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면서 잊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어머니 아버지 교회 가지 마세요’입니다.”

농어촌교회 목사님이 한숨 내쉬며 전한 이야기에 가슴이 미어졌다. 자녀들을 탓할 순 없다. 이것이 오늘날 농어촌교회의 현실이다.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은 농어촌 환경을 바꿔 놨다. 급격한 고령화와 이농현상이 맞물리며 가족농사(소농)가 사라진 자리를 기업농사(대농)가 차지했고 스마트농업이 빠르게 확산되며 전통적 방식에 머물고 있는 농어촌교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20년은 잃어버린 해다.” 농어촌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푸념 섞인 말이다. 올해는 유례없이 긴 장마와 태풍 피해가 있었다. 지난해 대비 수확이 40% 줄어든 작물도 있다고 한다. 낙과 피해도 컸고 농산물이 익어도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과실 비율이 높아 곳곳이 시름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더 강도 높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가장 힘들 때 코로나19라는 팬데믹까지 찾아와 우리 일상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농촌경제의 어려움은 교회 사역에 직결된다. 성도의 어려움이 곧 교회의 어려움이며 고난의 시기가 길어지면 힘겹게 뿌리내린 사역현장이 흔들리곤 한다.

코로나19 장기화와 함께 농어촌교회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았다. 다행히도 일부 대면예배가 허락됐지만,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아볼 순 없다. 이웃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집집마다 음식을 장만하는 내음이 마을을 가득 채우던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함께 모여 교제하며 서로의 수고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축제 같은 시간을 기약할 수조차 없게 됐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교회를 향한 농어촌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이다. 농어촌교회의 경제적 어려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목회 현장의 재정 압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온라인 예배 시스템도 없거니와 헌금을 이체해 달라고 요청드리기도 조심스럽다. 농어촌 목회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어르신들이 계좌이체로 헌금을 보내면 목사가 가져가는 줄 아십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렇다고 농어촌교회가 문을 닫을 순 없다. 농어촌 목회학교가 열린 지난 12일 전북 김제 금산교회에서 농어촌 목회자들은 단단한 목소리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농어촌교회 사역 현장을 뭘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며 사람의 뜻만 주장하고 사람의 목표, 사람의 소유만을 탐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생명공동체로 이뤄 갑시다.”

초기 조선땅을 찾은 선교사들은 역병이 창궐했을 때 우리 선조들의 피고름을 빨아주고 품어 안으며 복음을 전했다. 농어촌 선교현장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품은 이들이 오늘도 한국교회의 그루터기를 지키는 곳이다.

이제 공교회정신, 공동체정신,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회복해야 할 때다. ‘한 사람이 1000걸음’을 가기보다 ‘1000사람이 한 걸음씩’ 나아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공교회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코로나’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코로나19에 고통과 아픔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교회가 힘을 모을 때 농어촌교회는 온전한 새언약의 교회공동체로 회복될 것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6323&code=23111412&sid1=mco

김기중 (목사)

한국농선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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