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 목사의 코로나19는 교회혁신의 기회다] <14> 선교를 ‘생명줄’로 여기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한다

작성일2020-11-13

이강우 서울 좋은나무교회 목사(가운데)가 지난해 10월 한·일 목회자들과 함께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자란 일본 가고시마의 기념비를 살펴보고 있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그리스도를 모른 채 살아간다면 흑암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교는 복음의 능력,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현지인들이 마음 문을 열면 선교사는 문화공동체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주님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선교사를 통해 그 공동체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성령 하나님을 모르던 선교 현지 사람들이 선교사 한 사람을 통해 복음의 능력으로 부활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게 이방인을 복음으로 바꾸는 ‘대표성의 법리’다.

선교는 예수님의 몸이 되는 경험을 한 사람, 부활 경험을 한 사람을 파송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몸이자, 교회의 몸으로서 충성스럽게 섬긴 경험이 있는 선교사만이 선교지에서 부활의 능력을 전할 수 있다.

따라서 신학교를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탁월한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를 통해 주와 종의 관계와 삶의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철저히 경험해야 한다. 섬기는 영혼이 사탄 마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는 다음 몇 단계 과정을 통해 교회를 세운다. 우선 성령체험이다. 선교사 자신이 먼저 말씀으로 세상을 보는 영의 눈을 뜨고, 말씀으로 그 땅을 흑암에서 하나님 나라로 이끄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맞아들이는 것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인격을 사로잡으신 상태를 뜻한다. 선교사 자신이 인격적으로 그분을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둘째,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전한다. 셋째, 부활의 경험으로 흑암에서 빛으로, 사탄에게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일련의 과정을 전한다. 넷째, 예수님을 믿는 기초 단위인 공동체를 구성하고 한 몸 의식을 갖는다. 자신을 부인하고 공동운명체로 역할을 한다. 다섯째, 세워진 공동체에 예배와 교제, 말씀훈련, 전도와 선교, 봉사로 예수님의 몸 된 교회기능을 세운다.

이처럼 선교사는 5가지 과정을 거쳐 공동체를 경험하고 교회를 개척한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경험하지 않고 선교지로 향하는 선교사가 많다는 점이다. 대개 관리형 목회에 익숙한 목회자를 파송하고 교회 개척이 아닌 선교지 ‘관리’에 치중한다.

선교단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선교사 모집·훈련·파송 때 대표성의 법리를 따르지 않고 교회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채 열정만 가진 사람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선교는 누가복음 24장 말씀처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 제자가 선교지에서 그것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부활 경험이 없이 선교 현지 문화에 들어가면 선교사보다 현지 목회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상대방에게 절대 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문화가 있다. 만약 선교사가 현지 목회자화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복음 전파의 문을 스스로 막아버린다. 자발적으로 전도의 문을 막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선교사는 현지 목회자라는 틀에 갇히지 말고 교회 개척자가 돼야 한다.

선교사는 선교지에 나가기 전 철저한 문화연구도 해야 한다. 서울 좋은나무교회는 지난 10여년간 일본선교를 위해 세 차례 일본인의 의식구조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고 기도매뉴얼을 출간했다. 복음 전파 전략을 짜기 위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동참했다. 이처럼 선교는 교회 전체가 하는 것이다. 교회만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처치십(churchship)이 훈련된 일꾼이 있다면 신학을 전공하도록 후원하고 그를 선교지로 파송해 디사이플십(dicipleship)을 세워야 한다. 파송 선교사는 파송교회 담임목사와 당회의 지도를 받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 방법이다. 선교단체는 선교사의 현지 위기관리와 전략 수립 등을 협조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선교를 ‘생명줄’로 여기는 교회, 사도행전적 교회는 반드시 부흥한다. 건강한 선교를 하는 교회는 처치십과 디사이플십이라는 두 가지 기둥이 잘 놓여있다. 선교는 파송교회의 지도를 받아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제자도의 정점은 선교다.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다. 그걸 망각하면 교회는 쇠락하게 된다.

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교회가 위기를 맞았는가. 평소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경험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교회만 채우는 처치십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힘을 내부에만 소진하고 게토가 된다. 교회는 더이상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교회를 개척해본 건강한 교회는 제자도를 실천한 일꾼을 선교사로 양육한 뒤 파송한다. 그 훈련과정 없이 관리형 목회만 배운 선교사를 선교지로 보내면 안 된다.

선교의 처치 이노베이션이 필요한 때다. 거창한 세계선교가 아닌 특정 족속을 제자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 모든 선교 패러다임은 교회로부터 시작해 교회로 끝을 맺어야 한다. 선교는 특정 족속을 제자 삼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연구하며 섬기는 것이다. 선교적 측면에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처치십과 복음 전하는 제자도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0495

이강우 (목사)

전북대 건축과, 연세대 대학원 졸업, 합동신학대학원대 목회학석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IBM 근무. 현 서울 좋은나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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