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 목사의 코로나19는 교회혁신의 기회다] <11> 주님의 뜻은 세상 책임지는 건강한 교회공동체

작성일2020-10-23

서울 좋은나무교회 ‘주말캠프’ 소속 학생들이 2018년 9월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을 방문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좋은나무교회 초·중학생들은 매주 주말 교회에서 숙식을 하면서 신앙·인성·독서훈련인 주말캠프를 진행한다.

말에는 영향력이 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졌다. 예수님도 오순절 성령강림 때 각 사람의 입을 통해 온 나라와 백성에 큰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말의 권세로 일을 하시는 것이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고하는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나온다. 사람에 대한 죄와 모독 행위는 용서를 받지만, 성령 하나님을 말로 거역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가나안의 정탐꾼들이 돌아와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고, 그것에 간담이 서늘해진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에게 악평을 늘어놓는다. 이때 하나님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결과 악평한 사람은 모두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생존한다. 용서와 처벌이 말에 따라 좌지우지된 것이다.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게 하심으로 당신의 일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갖고 선포하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목회자의 말은 교회를 대표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목회자의 말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말이 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말하는 교회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목회자는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교회의 대표로 말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라고 나온다. 영문으로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의 대행자(representative of the Lord)로서 하라”고 표현돼 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행동하고 말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목회자의 말과 행동은 그리스도를 대행해야 한다. 이렇게 큰 의미와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들이 만약 교회 내부의 일만 이야기하고, 교회에서 우리만 서로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얼마나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까. 세상이 어찌하든지 교회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균형한 것인가.

예수님은 교회만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게 아니다. 온 천하 만물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셨고 교회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신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수님의 사역을 매우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의 섬기는 교회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교회만 섬기는 목회자가 많다. 어찌 보면 교회에는 무한 책임을 가지면서 세상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태어나 살다가 교회에서 삶을 마치고 천국에서 영원한 교인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살다가 세상을 마쳐선 안 된다. 교회의 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주님의 눈빛처럼 세상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요구한다.

만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흉흉해진 세상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우리 교회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반쪽 신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교회론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를 통한 세상의 구원 메시지 선포에 있다. 교회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다. 교회를 통해 세상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 세상을 책임지는 건강한 교회공동체, 그것이 주님의 뜻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빛을 비춰야 한다. 복음의 메시지를 말로 선포해야 한다. 교회가 만약 세상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세상을 향한 예수 프레임을 씌우지 못하면 반대로 어둠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 방법은 교회를 통한 세상의 통치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돼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야 한다. 그렇게 영적으로 세상을 비춰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세상은 자동으로 어두워지게 돼 있다.

코로나19로 교회마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계속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성도수 200명 이상의 교회는 주변 이웃과 작은 교회를 도울 여력이 충분히 있는 ‘대형교회’다. 대형교회는 작은 영광의 불빛을 비춰야 한다. 그 시작은 생존의 위기에 놓인 임차교회의 1년 치 임차료를 같이 나누고 지원해 주는 것이다. 성도 1명당 월 5000원의 헌금으로도 충분히 작은 교회 한 곳을 살릴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전국의 수많은 대형교회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말의 위력을 사용해서, 실천을 통해 작은 교회를, 그리고 세상을 살려야 한다. “우리 교회가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자, 여기에 우리의 작은 정성이 있습니다. 같이 힘을 냅시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위기를 함께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7623

이강우 (목사)

전북대 건축과, 연세대 대학원 졸업, 합동신학대학원대 목회학석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IBM 근무. 현 서울 좋은나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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