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채 목사의 거룩한 성품과 습관 <18·끝> 안식

작성일2020-02-18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안식이다. 한기채 목사와 장동숙 사모가 2018년 크리스마스에 아들 보형, 손자 장하주, 딸 신형, 사위 장준영씨와 함께했다(뒷줄 왼쪽부터). 중앙성결교회 제공

쉼은 낭비가 아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 중 “가장 위험한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입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사고가 납니다. 인생의 쉼표는 인생의 브레이크입니다”란 내용이 있습니다. 음악에서도 쉼표는 중요한 악상 기호입니다. 쉼표 없이 연주가 계속된다면 그 음악은 소음이 됩니다. 음악의 쉼표처럼, 안식은 우리 삶에 리듬을 선물해 주며 결과적으로 우리 삶을 완성해 줍니다.

세상은 능률과 효율, 생산성을 숭배합니다. 존재가 아니라 행위로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쉬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식과 쉼은 더욱 큰 것을 가져다줍니다. 쉬지 않고 나무를 패는 사람과 몇 시간마다 쉬면서 도끼날을 갈아 나무를 패는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나무를 패겠습니까.

인생을 진정 가치 있게 만드는 대부분은 분주함이나 노력으로 얻는 게 아닙니다. 안식과 쉼에서 나옵니다. 안식으로 분주함에 매몰되었던 일상의 시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상으로부터의 거리감’은 인생을 더 알차고 값지게 살 기회와 통찰을 얻게 합니다. 열정과 창조성의 샘이 일상에서 말라버리지 않도록 안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안식하셨다

안식을 창조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안식할 필요가 없는 전능한 분이지만, 친히 모범을 보임으로 피조물이 규범 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하나님의 창조는 일곱째 날까지 이어졌으며 일곱째 날에 창조된 것이 안식입니다. 여섯째 날까지는 보이는 것들이 창조됐지만 일곱째 날엔 고요 평안 조화 휴식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이 창조됐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귀중한 것들이 창조의 시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창조는 안식으로 완성됐습니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제정한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안식일에 쉬면서, 그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했습니다. 휴 복 성(休 福 聖)은 안식일의 본질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육체만 쉴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는 복을 받으며 거룩해지는 것이 안식의 본질입니다. 안식일은 휴식을 취하면서 하나님과 우주의 리듬에 맞춰 자기 삶의 숨 고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로 일도 소중하고 쉼도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일과 쉼 모두를 긍정하면서 둘의 균형을 요구합니다. 안식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분리됐던 육체와 영혼의 간격을 좁혀줍니다. 출애굽이 외적 자유의 상징이라면, 안식일은 내적 자유의 상징입니다. 기독교는 시간을 성화하는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안식은 일상의 시간을 의미 있는 거룩한 시간으로, 물리적 시간을 영적 시간으로, 크로노스(인간의 시간)를 카이로스(하나님의 시간)로 바꿔줍니다.

안식일에 시간과 영원이 만납니다. 하나님의 영원이 우리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영원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 나라를 시간 속에서 앞당겨 경험하는 것입니다. 또 하루의 성화로 나머지 시간도 성화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시간의 영적 구원입니다. 안식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창조주가 주는 큰 은혜와 선물을 포기하게 됩니다. 안식일에는 창조 구원 부활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평안히 안식하라

안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지만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인 만나 사건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확증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영적인 진리와 축복의 언약을 담고 있습니다.

안식하지 못하는 건 하나님 축복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행위입니다. 또 자녀의 삶을 포기하고 노예의 삶으로 회귀하는 어리석은 옛 습관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안식년과 희년이라는 더 큰 은혜로 나가는 기초석이 됩니다. 결국 안식일은 일과 재물이 우상이 되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에 지배당하는 삶을 거부합니다. 결국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지켜줍니다.

믿음으로 은혜 안에서 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우리가 쉴 때 우리의 일이 그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안식일의 기본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유익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일을 배우는 것입니다. 생산성 효율성 성취감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앞세우게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거룩한 습관으로 삼으십시오. 우리에겐 언제나 누릴 수 있는 ‘휴대용 안식’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분주하고 고된 일상을 초월해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지난 18주 동안 이어 온 ‘거룩한 성품과 습관’ 시리즈를 끝냅니다. 영성과 도덕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행위의 삶’ 이전에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안에서 ‘존재의 삶’을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모두 거룩한 성품과 선한 습관을 기르길 바랍니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9873

한기채 (목사)

미국 밴더빌트대 철학박사(PhD). 서울신학대 교수 역임. 현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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