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채 목사의 거룩한 성품과 습관 <17> 경청

작성일2020-02-04

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교회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홀사모 모임인 ‘안나회’ 회원들을 초대해 말씀을 전하고 있다. 중앙성결교회 제공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

시골에서 올라온 한 할아버지가 복잡한 도심을 걷다 “여기도 귀뚜라미가 우네”라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이 말을 들은 청년이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거리에서 정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나요.” 할아버지는 가로수의 이파리를 들춰 귀뚜라미를 보여준 뒤,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길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주변 행인 대부분이 동전이 떨어진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귀뚜라미 소리는 듣지 못해도 돈 소리엔 반응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겐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듣는 능력이 있다네.”

경청은 최고의 사랑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째 의무는 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 모건 스콧 펙은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은 원칙적으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진정으로 자기 말을 듣는다는 그 자체만으로 눈부신 치료 효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청이 쉬운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에 불행과 비극, 불통과 갈등이 가득한 이유입니다. 소통하지 못해 고통을 당합니다. 좋은 의사와 좋은 교사, 좋은 목회자와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는 경청해주는 사람입니다.

경청은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합니다. 자녀들이 자랄 때 저는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썼습니다. 나중에 보니 아이들이 내게 해 준 말 가운데 무궁한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란 책을 썼습니다. 아이들의 말 가운데 귀한 인생의 지혜가 적지 않고, 이것이 부모에게 주는 진정한 선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아이들을 통해 전합니다. 자녀에게 시간을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은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거부의 감정이 쌓여 열등감 있는 아이로 자랄 위험이 있습니다. 존중받는 것을 느낄수록 아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를 깊이 알게 될수록 대화는 풍성해집니다. 경청은 최고의 자녀 사랑법입니다.

경청은 듣는 자에게도 유익합니다. 아라비아 속담 중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성경 역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 1:19)고 합니다. 경청을 통해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입니다. 경청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경청 기술은 인간관계에서 필수 요소입니다.

온몸으로 듣는 경청

잘 듣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공감하라, 인정하라, 말을 절제하라, 겸손하게 받으라, 온몸으로 응답하라.” 경청은 나를 겸손히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내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판단하려는 나를 비우고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너, 네 안에 나를 받아들이고 공감하니 진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경청은 깊이 있게 듣는 것입니다. 귀로 듣기보다는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온몸으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청에는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 보통 듣는 것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활동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는 하나님

기독교인으로서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는 무덤에서도 살아납니다.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영광이 떠나고 위기와 영적 침체가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들릴 때 기적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평시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따라서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선 소음을 줄여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소음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릴 정도로 높아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말과 활동이 하나님 말씀을 삼키는지 모릅니다. 일을 더 많이 하기에 앞서, 먼저 잠잠히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영적 경청’, 즉 하나님의 살아있고 창조력 있는 말씀에 마음이 활짝 열려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영적 독서를 해야 합니다. 영적 독서란 성경 본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잠잠히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성경을 입맛에 맞춰 이용하기만 한다면,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나를 읽고, 말씀이 나를 해석하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말씀 읽기는 침묵과 묵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침묵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먼저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입으로 아뢔야 합니다.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는 말씀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린 데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가 많고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 마실 물이 없듯,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영적 경청이 우리의 거룩한 습관이 돼야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크게 들려지길 바랍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9007

한기채 (목사)

미국 밴더빌트대 철학박사(PhD). 서울신학대 교수 역임. 현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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