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채 목사의 거룩한 성품과 습관 <16> 감사

작성일2020-01-22

한기채 목사가 지난 11일 충남 논산 연무대군인교회에서 군 장병 세례자 2000여명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중앙성결교회 제공

18세기 영국 복음주의운동에 영향을 끼쳤던 윌리엄 로(William Law)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도인지 아는가. 가장 많이 기도하거나 가장 많이 금식하는 사람이 아니요,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감사의 영을 갖는 것보다 더한 기적은 없다. 감사하는 영혼은 접하는 모든 것을 복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감사의 습관은 거룩하고 복된 습관입니다.


감사란 자신이 받은 것 인정하는 것

누가복음 17장 11~19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감사에 대한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갈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갑니다. 두 지역의 경계가 되는 이 지역은 양쪽 모두에 소외된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철저히 격리되고 숨어지내던 한센병 환자 10명을 만납니다. 이들은 몸의 고통보다 심적 고통이 더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소리 높여’ 도움을 청했고, 다 같이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감사의 길목에서 이들은 갈라졌습니다. 단 한 명,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큰 소리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은혜받는 사람은 많아도 감사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감사란 받은 것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치유의 은혜를 받았음을 인정했습니다.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thank)는 받은 복의 양이 아니라 깨달음의 깊이, 즉 생각(think)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를 우연으로 바꾸면 감사는 사라집니다. 일상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눈은 복된 눈입니다.



감사는 마중물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 신령한 복을 받게 됩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는 감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 감사는 펌프에 붓는 마중물처럼 더 많은 감사를 불러옵니다.

육신의 치유에 감사했던 사마리아인은 영혼 구원까지 얻게 됩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

미국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매일 감사한 일 5가지를 찾아 감사일기에 적는 습관으로 인생이 놀랍게 변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는 모든 것을 받았음에도 주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감사치 않는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우리는 감사가 습관이 될 정도로 훈련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만족할 줄 모르고,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만한 상황에서만 감사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 훈련으로 상황을 초월해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가 행복해지는 습관이라면, 불평은 불행해지는 습관입니다.

빌립보서는 심지어 ‘선행 감사’, 즉 미리 감사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뤄짐을 믿고 미리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미리 감사하는 것은 거룩한 도전입니다. 감사기도는 믿음의 기도이고 소망의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이 합력해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이 이뤄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의 습관은 소망의 행위입니다.



약함도 감사의 조건

인도에서 전해져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두 개의 물동이를 지고 매일 물을 나르는 지게꾼이 있었습니다. 물동이 중 하나는 흠 없이 성한 것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중간에 금이 가 있어 물을 나를 때면 물이 계속 샜습니다. 그 물동이를 지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가득 찼던 물이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깨진 물동이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지게꾼에게 불평하듯 말했습니다. “금 간 옆구리 탓에 항상 물을 절반밖에 나르지 못해요.” 지게꾼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던 길을 자세히 보렴. 네 쪽을 따라 꽃들이 피어난 것이 보이니. 네 깨어진 흠에서 흘러나온 물 덕분에 길가의 꽃들이 아름답게 자랄 수 있었단다.” 깨진 물동이는 자신에게 물을 길어 오는 것 외에 더 큰 존재 의미가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감사할 제목이 없고, 원망스러운 일만 가득한 것 같아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계획을 믿는다면 그 약함과 부족함마저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면 좋고 안 하면 좀 아쉬운, 그런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데, 행복은 소유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에 행복합니다. 매 순간 감사를 실천하는 삶을 살며 감사가 거룩한 습관이 될 때, 하나님이 부어 주는 많은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7925

한기채 (목사)

미국 밴더빌트대 철학박사(PhD). 서울신학대 교수 역임. 현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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