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복’은 무엇일까

팔복, 천국을 소유한 자의 복

진실로 복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죄를 해결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우신 보혈에 의하여 자신의 죄가 해결된 사람은 이제 천국을 소유하였습니다. 그가 소유한 천국은 너무나 값진 것입니다. 그는 실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지면에서 다룰 내용은 흔히 우리에게 “팔복”(마 5:3~10)이라고 알려져 있는 내용에 대한 것과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복이라고 하면 통상 유교적 선입관념에 입각한 “부귀영화”의 내용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라는 개념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적인 복의 개념은 통상적인 세상의 생각과는 상당히 역설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은, 그가 부자거나 또는 권세가 있다든가 그리고 건강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성령님의 견인에 의하여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끝까지 간직하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엡 1:3)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물질적인 풍부함이 위에서부터 이 땅의 인간들에게로 제공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참된 의미는,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소유한 사람이 그 소유한 모든 것을 주고서도 얻을 수 없는 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와 같이 고귀한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로 값진 복입니다. 비로소 소유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을 전혀 값없이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생을 위한 길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이 참으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팔복의 주제는 지상에서 현상적으로 누리는 것으로서의 복에 대한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가 가난하며 억눌리는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하고 청결하며 화평케 하는 일 등등에 힘쓰는 자임을 보이는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인 됨을 나타내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그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은, 또는 그러한 일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천국 시민이 된 바 복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의해서 자신의 “죄”를 해결 받지 않고서는, 앞에서 말한 그와 같은 여러 가지 상태를 결단코 보여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언하건대, 진실로 복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죄를 해결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우신 보혈에 의하여 자신의 죄가 해결된 사람은 이제 천국을 소유하였습니다. 그가 소유한 천국은 너무나 값진 것입니다. 그는 실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복을 자신의 죄를 해결 받은 사실 안에서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더 이상 그 옛날의 죄인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라고 말씀합니다.
팔복의 특징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따로 따로 나타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이들 팔복의 모든 특징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팔복의 전제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성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절). 첫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약속된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은, “영적으로 궁핍함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며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극복하기에는 자신이 극도로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되어 전적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으로서의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천국이란 하나님의 통치가 현재적으로 그에게 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4절). 두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본 성품은 “애통하는 자”에게 약속된 바 “위로”에 대한 것입니다. “애통”은 죽은 자에 대해 애도를 나타내거나 타인의 불행과 죄에 대한 극도의 슬픔을 나타내는데, 이렇게 극도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앞에서 말한 심령의 가난과 이곳에서 말하는 애통하는 행위는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그것의 원인이 죄 때문에 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와 같은 애통은 심령이 가난한 자 외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는 도저히 셀 수조차 없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서 항상 애통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절). 세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본 성품은 “온유한 자”에게 약속된 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에 대한 것입니다. 온유함이란 부드럽고 연한 마음을 가리킵니다(약 3:13). 그리고 이 온유함은 겸손한 마음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엡 4:2; 골 3:12; 마 11:29). 또한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벧전 3:4, 14~15).이 온유함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근본적인 성품입니다. 모세의 온유와 예수님의 온유는 “강인함 가운데 있는 부드러움”이었습니다.
즉 이 말은, 참된 온유는 정당한 의분을 내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거짓되이 변질되어 가는데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온유도 아니고 겸손도 아닙니다.
온유한 자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비록 현재는 움막조차 지을만한 땅도 없을지라도, 그리고 온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나운 자들이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을지라도 이것은 잠시 잠깐일 뿐입니다. 진정한 결과는 오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절). 네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본 성품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약속된 바 “배부름”에 대한 것입니다. 복 있는 자는 본능적으로 의를 갈구하는 자입니다. “주리고 목마르다”라는 표현은 인간의 본능을 강하게 드러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주님은 다른 복들과 달리 여기 “의”에 대해서는 “주릴” 뿐만이 아니라 “목마르기도” 하다고 표현하심으로써, “의”에 대해 가지는 갈급함의 정도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계십니다. 주리고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뜨겁게 “갈망”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간직하고 있어야 할 기본 성품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절). 다섯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본 성품은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약속 되어 있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자비로운” 또는 “동정적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긍휼히 여기는 자”란, 마치 하나님께서 그가 자비를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한, 끝까지 변치 않는 자비를 베푸시는 것과 같이, 그렇게 변함없는 자비를 타인에게 베푸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절). 여섯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기독교인의 기본 성품은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약속되어 있는 바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 “마음이 청결한 자”는 레위적인 의식적 정결이나 또는 단순한 도덕적인 정결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에 의해서 마음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행 15:9). 이처럼 오직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 자요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자로서 진실로 성실한 자가 바로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이런 자는 복이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을 누릴 것이며 이미 또한 누리고 있습니다.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큰 축복
일곱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기본 성품은, “화평하게 하는 자”에게 약속된 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화평하게 하시는 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그의 피로써 이루신 십자가의 희생 사역 안에서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을 누릴 수 있도록 화평하게 하셨습니다(골 1:20). 그의 이렇게 이루신 화평에 근거하여, 그 화평을 전개시켜 나가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덟 번째로 고찰해 보아야 할 기본적인 기본 성품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에게 약속된 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박해를 받은 자”란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위해 “박해를 받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박해를 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주님은 처음에 천국으로 시작하셨다가 이제 천국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전체적인 주제는 바로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박해와 고난을 받을 때에 오히려 기뻐합니다. 고난과 박해 뒤에 감추인 “천국의 소유”를 발견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며(골 1:24),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는데, 기뻐하되 크게 기뻐하고 이를 즐거워하여 인내로써 감내합니다(히 10:32~39). 고난 중에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애매한 고난이거나 또는 박해 받는 척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행동 하나 하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이천식 (목사)

파주 사랑의교회 파주시교회·시 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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