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 믿으면 삶에 아무 걱정없어요

교회 온 첫 날 기도 통해 남편 불면증 사라져
대장암 투병도 기쁨과 감사로 ‘완치’ 승리


 교회에 간 첫날 기도도 잘 할 줄 모르면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 제 남편에게 불면증이 있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제 남편을 자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 헌금을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1970년대 중반 결혼 후 첫 아이인 딸을 낳고 시댁식구들과 주변 분들로부터 전도를 많이 받았다. 내게 누가 전도를 해오면 “나는 조금 있다 나가겠다. 나가면 불같이 믿겠다”라고 말만하고 교회에 가지 않았다. 당시 남편 조병두 집사의 불면증이 아주 심했는데 그 때 여의도순복음교회 지역장님의 전도로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 오게 됐다. 남편의 불면증이 고침을 받은 후 나는 어린 딸을 데리고 주일 예배는 물론 구역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를 열심히 다녔다. 늘 말했던 대로 뜨겁게 믿겠노라 했던 것처럼 예배드리고 전도에 힘썼다.

 전도의 열정이 뜨거워 친정어머니께도 전도하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친정어머니께는 전도의 ‘전’자도 꺼내지 못했다. 법당에서 살다시피 하시는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고 싶어 계속 기도만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느 날 어머니 스스로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렇게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으셨다.

 둘째인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도 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전도지를 나눠가지고 함께 동네 전도를 다녔다. 전도를 하면서 남의 집 아이들을 돌보고 동네 사람들의 일손이 부족한 곳에 달려갔다. 언제나 아이들은 바쁜 엄마를 생각해주며 자기들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해냈다. 각자 교회에서 찬양대 등 봉사를 하며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장했다. 신앙적으로 바로 선 아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여유가 있었다. 찬양대 연습을 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면서도 학교 공부에 소홀하지 않았다. 기특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낳았으니 내 자식,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한테 맡겨 주신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저절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기도를 많이 했다. 용돈 한번 제대로 주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딸과 아들은 대학생이 되자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해외 단기 선교도 하고 의미 있게 대학생활을 보냈다.

 장성한 자녀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딸은 그곳에서 좋은 신랑을 만나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아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하며 일도 병행하는 중이다. 특히 아들은 결혼한 상태에서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텐데 신앙이 좋은 아내를 만나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아들이 유학을 결정하고 떠나기 전 갑자기 건강검진 중 내게 대장암이 생겼다는 것이 밝혀졌다.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상황이었는데 근심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과 달리 내 마음은 터질 것 같은 기쁨이 가득했다. 수술을 하러 들어갈 때도 내입에서는 찬송소리만 흘러나왔다. 감당할 수 없는 기쁨 속에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천국에 가면되고 살면 전도를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암 치료를 하며 몸무게가 10㎏이나 줄기도 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지난해 이영훈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았고 드디어 올해 수술한지 5년이 지나 5월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나의 남은 소원은 전도를 많이 해서 많은 분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정리=복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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