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40대 당뇨… ‘젊어서 괜찮겠지’하다 온몸 망가진다

작성일2019-03-19

30대 당뇨 환자(오른쪽)가 합병증인 족부궤양 발생 여부를 알기 위한 보행 검사를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직장인 정모(36)씨는 스무살 때 당뇨병 진단을 받아 인슐린을 투여받고 혈당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하는 동안 수시로 약을 거르면서 혈당 조절을 잘 하지 못했다. 얼마 전엔 2~3개월 혈당 조절 상태를 알려주는 ‘당화혈색소’ 수치(당뇨 환자는 6.5~7% 이하 유지)가 11.3%까지 올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양쪽 발의 감각이 둔해지고 오줌에 거품이 많아졌다. 시력도 점점 떨어지는 듯했다. 합병증인 당뇨 발(족부궤양)과 신장(콩팥)병증, 망막증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됐던 것이다. 정씨는 “당뇨병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젊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인생에서 한창인 때에 그의 몸은 당뇨로 점점 망가져가고 있다.

고령 환자들의 만성질환으로 여겨졌던 당뇨가 젊은 사람들도 피해갈 수 없는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 ‘젊은 당뇨병’의 연령 기준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대한당뇨병학회는 일반인에서 당뇨병 신호가 오기 시작하고 국가건강검진 대상이 되는 40세보다 이전에 발생할 때로 보고 있다. 미국당뇨병학회는 이보다 높은 45세를 기준으로 한다.

지난해 말 발표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0~39세 당뇨 유병률은 남자 3.0%, 여자 0.9%였다. 2005년 조사 결과(남성 1.7%, 여성 1.2%)에 비해 남성의 경우 배 가까이 늘었다. 30세 이상 전체의 당뇨 유병률이 2005년 9.1%에서 2017년 10.4%로 약간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젊은 남성에서의 당뇨 유병률 상승 수치는 비교적 크다.


당뇨병학회가 지난해 공개한 자체 조사에서 30세 이상 전체의 당뇨병 인구는 501만7000명(2016년 기준)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30대는 22만7000명(남자 16만명, 여자 6만7000명), 40대는 75만6000명(남자 48만2000명, 여자 27만4000명)이었다. 50대 이후 급증하는 당뇨병에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30, 40대 당뇨 환자가 100만명에 육박한 것이다.

현재 29세 이하 연령대의 국가 혹은 학회 차원의 당뇨 유병률 통계는 없다. 따라서 이들까지 포함하면 젊은 당뇨 인구는 훨씬 더 많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당뇨병 증가의 주된 원인은 운동 부족이나 서구화된 식습관이다. 이런 위험 요인에 어려서부터 길들여지고 성인이 돼서도 사회생활 등으로 잘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만 인구 급증도 한몫한다. 높은 열량 음식을 많이 먹으면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을 낮추는데, 이때 췌장이 과도하게 일을 하게 돼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지고 고혈당이 유지된다.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 최종한 임상강사는 18일 “특히 체중 관리나 식습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젊은 여성에 비해 젊은 남성의 경우 과체중이나 비만에 보다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 잦은 음주와 잘못된 식습관 탓으로 당뇨에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당뇨 전(前)단계인 ‘공복 혈당장애’를 가진 젊은층도 크게 늘고 있다. 공복 혈당장애는 당뇨 진단을 받은 적 없고 먹는 혈당약이나 인슐린 치료를 받은 적 없는데도 검진에서 공복 혈당이 100~125㎎/㎗이면서 당화혈색소 수치가 6.5% 미만일 때 해당된다. 당뇨병은 공복 혈당이 126㎎/㎗ 이상, 당화혈색소가 6.5% 이상일 때 진단받는다.

2016년 기준 30대의 공복 혈당장애 유병률은 17%, 40대는 26.1%였다. 30대 5명 가운데 1명, 40대 4명 가운데 1명 정도가 ‘예비 당뇨 환자’에 해당되는 셈이다.

젊은 당뇨의 심각성은 앓아 온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합병증의 위험도 커진다는 점이다. 당뇨는 현재의 의료기술로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평생 정상 혈당을 유지해 합병증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젊은 나이엔 당뇨 혹은 당뇨 전단계 진단을 받더라도 주위 시선 때문에 제대로 된 식단 관리나 약물 조절이 어려워 당뇨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는 최근의 젊은 당뇨 환자 증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발빠르게 별도의 ‘젊은 당뇨병 클리닉’을 개설했다. 45세 이전 당뇨 환자 가운데 합병증 진행 여부가 불명확한 이들을 초기부터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합병증을 예방하는데 초점을 둔다. 지난해 센터를 찾은 3만여명의 당뇨 환자 가운데 약 30%가 30~49세였다고 한다.

당뇨는 통증 등 당장의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젊은층은 자신이 당뇨인지 잘 모르거나 합병증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쁜 사회생활로 평일 병원에 발걸음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번 당뇨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복용해야 해 당뇨 환자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도 조기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젊은 당뇨병 클리닉은 이런 점을 고려해 피 검사부터 족부궤양, 망막증, 신경병증 등 당뇨 합병증 검사를 반나절 동안 한꺼번에 해결하는 ‘원스톱 진료’와 꾸준한 사후 관리를 진행한다.

이 병원 당뇨병센터 김민선(내분비내과 교수) 소장은 “젊은 당뇨 환자는 노년기에 발병한 이들보다 오래 질병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직장 건강검진에서 당뇨 전단계로 판정받았거나 자꾸 입이 마르는 등 초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혹은 당뇨 가족력이 있다면 검사를 꼭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7742&code=14130000&sid1=h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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