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작성일2019-06-04

호주 연수에 참가하는 아이들에게 평소에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을 몇 년 동안 꾸준히 물었다. 몇 십 명의 아이들을 6개월마다 새롭게 만나서 3주 동안 함께 지내다 보면 아이들이 정말 빠르게 변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안 변한 것 중의 하나가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아이가 기억하는 우리 부모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의 1등은 늘 공부와 관련된 말이었다.
“공부해라. 공부했니? 공부해야지. 공부는 언제 할 거야. 숙제 없어? 숙제 했니? 공부 안 하고 뭐해. 그런 걸 할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영어단어나 외워.” “수포자(수학포기자)는 대포자(대학포기자)고 대포자는 인포자야” 하는 공부와 관련된 말들이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말은 “OO하지 마라”는 금지의 언어였다. “이걸 해봐라.” “이건 어떠니?”라는 제안의 말이 아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일을 당장 멈추라는 금지의 명령어를 아이들이 두 번째로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핸드폰 좀 그만해.” “게임 좀 그만해.” “떠들지 마.” “시끄럽게 하지 마.” “동생하고 다투지 마.” “멍 때리지 마.” 공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무심하게 그 행동을 금지하는 말을 한다. 다른 말로 대안을 제시하거나, 그 일이 왜 재미있는지 궁금하거나 언제까지 할 것인지 물어서 아이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드나 보다.

세 번째로 아이들이 기억하는 말은 ‘밥’과 관련된 말이다. “밥 먹어라. 밥 먹었니? 밥 먹어야지” 같은 말이다. 결국 아이들이 기억하는 우리 부모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핸드폰 그만하고 밥 먹었으면 공부 좀 해.” 이 한 문장이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부모가 많이 하는 말의 90%를 차지한다. 1위에서 3위까지 합하면 90% 가 넘었다. 그 외 기억하는 말들은 “어디야?” “언제 들어와?” 등으로 아이의 현재 위치를 묻는 질문이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부모님이 나에게 미소를 띠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은 3%도 안 되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공부하지 말고 놀아라. 네가 하고 싶은 게임 마음대로 해”, “핸드폰 새 것으로 바꿔줄 테니 마음껏 핸드폰 보면서 놀아” 이런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들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부모의 눈에는 공부 빼고 다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지만 학생일 때는 공부가 직업이고 공부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다만 그게 알고 있는 만큼 행동과 시간사용이 마음대로 조정되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은 “공부하지 말고 놀아라”가 아니다. “쉬면서 해”, “좀 쉬어라”, “힘들었지. 좀 쉬자”는 말이 1위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8시간에서 12시간 이상의 풀타임으로 공부를 하고 온 것이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관심이 가는 과목만 골라서, 배우는 기쁨을 누리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니까 배우고, 이해가 안 되면 시험을 위해서 억지로 외우기라도 해야 하는 지적노동을 하고 온 아이가 하루에 소화해야 하는 지식의 양은 소화불량 단계이다. 그렇게 지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힘들었지. 이제 좀 쉬자”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네가 뭐 한 게 있다고 쉬어.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오는 애들도 있는 것 몰라.” 이런 말을 망설이지 않고 한 적이 있다면 그 말을 들으면서 아이는 ‘진짜로 다음 시험에는 그냥 찍기만 해서 꼴등을 해 버릴까 보다’ 하는 생각이 지나갔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이 듣고 싶은 말은 “괜찮아”라는 말이었다. “괜찮아”라는 말은 어른들에게는 크게 공감을 못 주는 말이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마음에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라는 말이 생략된 채 마지못해 인정해주는 마음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괜찮아.” 이 단순한 형용사 속에서 아이들이 진짜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듣고 싶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은 결과가 나왔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잘못 했지만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이런 뉘앙스의 “괜찮아”란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세 번째로 듣고 싶은 말은 “지금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다. 아이가 똑똑하면 똑똑한 대로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말을 하게 된다. 성적이 나쁘면 나빠서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된다. “이번에 O등 했으니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네가 하고 싶은 1등 할 수 있겠네.” “하나만 안 틀리면 백 점이잖아. 좀 더 집중해서 공부해 봐.” “이렇게 계속하면 다음 학기에는 내년에 는 더 잘하겠다.” 이런 말로 아이들을 절망시킨다.
부모는 물론 아이에게 절망감을 심어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듣는 아이는 절망스럽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지금의 내 성적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부모를 보며 언제까지, 얼마나, 더 참고 노력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네가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알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천천히 쉬면서 해. 엄마아빠는 지금의 네 모습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해.”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지금의 상태에 머물러 노력하는 것을 멈추거나 더 후퇴할까 봐 부모들은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말을 아낀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는 말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이 아이들을 독려한다. 모든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서도 아이를 편하게 하는 말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사랑해” “파이팅” “힘내. 아자아자” 이런 영혼 없는 말 대신 바로 이 문장을 사용해 보자.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천천히 쉬면서 해. 결국은 다 잘 될 거야.”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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