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표정관리를 해야 하나요? 진짜 스트레스 받아요”

작성일2019-02-03

문 : “왜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무슨 일 있었어?” 방문을 벌컥 열면서 엄마가 들어 오더니 엘리베이터 눈으로 아직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나를 스캔합니다. “없어. 일은 무슨 일. 내가 맨날 밖에서 일이나 만들고 다니는 앤 줄 알아.” “쌀쌀 맞기는. 현관 들어오는데 네 얼굴이 밝지 않아서 그랬지.” 엄마는 내가 집에서 늘 인형처럼 웃는 얼굴로 있기를 바랍니다. 잠깐이라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순간을 못 참고 “왜 기분이 나쁘냐? 무슨 일이냐?” 꼬치꼬치 물고 늘 어집니다. 엄마가 나를 가만히 두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아요.

답 : 순수한 관심에서 나오는 걱정스런 질문도 때론 박힌 가시를 건드리는 것처럼 찌르는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내가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는 가까운 사람의 말도 귀찮고 나를 속박하고 간섭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까칠한 반응을 보이게 되기 쉽지요.
부모는 늘 아이의 낯빛을 살핍니다. 마음에 숨어있는 감정이 얼굴빛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의 얼굴빛이 밝지 않으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묻게 되지요. 물론 질문을 받는 내 입장에서는 심문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지만요. 그럴 때는 부드러운 대답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상황을 벗어나게 해줍니다. “좀 피곤 해서 그런가 봐요. 엄마, 아무 일 없으니까 먼저 쉬고 나서 말해도 될까요?”라고 내 생각을 말해주세요.
내 마음을 털어놓을 준비가 안 되었을 때는 유머로 답을 하는 것도 마음 상하지 않고 상황을 바꾸는 좋은 답이 됩니다. “엄마 눈은 셜록 홈즈보다 더 날카로워. 감추려고 했는데 내가 피곤하다고 얼굴에 써 있구나. 엄마, 나 한 시간만 자고 싶어요. 한 시간 후에 꼭 깨워주세요”라고 부탁을 해 보세요.
엄마는 왜 나를 그렇게만 생각하느냐면서 엄마에게 화살을 돌리면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하면서 상처를 받게 되지만 깨워달라는 딸의 말을 들으며 아직도 엄마에게 의지하고 있는 딸의 마음이 읽혀서 엄마는 마음을 놓을 거예요.

문 : 오늘은 학교에서 친구들 때문에 진짜 기분이 상했어요. 친하다고 생각한 애들이 나만 빼고 주말에 자기들끼리 논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은따’ 당한 기분이었어요. 그렇다고 “나한텐 왜 연락 안 했어?”라고 물어보기엔 자존심 상하잖아요. 못 들은 척 했는데 집에 오면서도 계속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얼굴이 어둡다”고 하시고. “엄마만 가만히 있으면 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 진짜 귀찮아” 하고 톡 쏘고 말았어요. 제가 나쁜 딸인 거죠.

답 : 엄마와 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상처 주는 말을 많이 주고받는 사이인 것 같아요. 친구들이 나만 끼워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았다는 것은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버릇없이 굴만큼 큰일도 아니랍니다. 어떤 일이든 딸로서 엄마에게 버릇없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곧 바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다음에 바로 할 일입니다.
영어성경을 읽다 보면 ‘바로. 즉시’를 표현하는 immediately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알았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마음으로 미안하고 ‘내가 나쁜 딸이야’ 하면서 내 생각에서만 반성하는 마음이 멈춰있어서는 안 됩니다. 엄마에게 말로 표현하는 행동이 있어야 진정한 사과가 됩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후회되는 것은 엄마에게 더 큰 돈이나 선물을 해드리지 못 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일에 따뜻하게 말하지 못하고, 고맙고 걱정되고 기쁘고 슬픈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 입니다. 엄마가 편해서 순간적으로 나쁜 말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지만 바로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한다면 엄마 역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거예요.

문 : 며칠이지만 친구들과 서먹서먹하니까 집에서 더 신경질을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엄마는 내가 엄마의 관심이 힘들고 제발 나를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는 것을 알까요?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집에서까지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답 : 사실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엄마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문제인데 그 짜증을 쉽게 터뜨릴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엄마인거죠. 내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만나면 사람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특히 예민한 성격이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더 못 견뎌합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엄마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책 읽기, 걷기, 먹기, 잠자기, 음악 듣기, 한숨 쉬기, 좋아하는 일 하기… 사람마다 선택이 다르지만 흥미로운 것은 6분의 독서가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68% 정도 없애준다는 영국 대학 교의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책상이나 가방에 기분이 우울할 때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준비해 두세요. 그래서 우울하다, 그냥 짜증이 나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싶을 땐 그 책을 읽어보세요. 60분이 아니라 6분만 책을 읽어도 짜증과 부정적인 골짜기를 헤매던 생각이 긍정적이고 밝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지요.
표정관리는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서 외부에서 오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죠. 그래서 표정관리란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단련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저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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