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배기 손주보다 더 철이 없는 딸, 어쩌면 좋아요?

작성일2018-08-09

문 : 결혼 한 지 10년도 훌쩍 넘은 딸, 나이 사십이 넘은 딸 이야기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일이 있을지는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클 때 아주 못돼 먹은 자식이었다면야 말이라도 되겠지만 아주 착하게 잘 자라서 결혼하고 자식까지 있는 딸입니다. 정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푸념을 늘어놓는데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다가도 말도 안 되는 이유에 한숨만 나옵니다. 제가 볼 땐 열 살배기 손주보다 더 철이 없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답 : 결혼한 자식이 자기 자식을 낳아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제 어른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셔야 보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드릴 수 있으니 설명해 주십시오.

문 : 지난 달 어린이날 딸 부부가 손주랑 같이 왔더라고요.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왔겠지요. 오랜만에 보는 예쁜 손주니 장난감 하나 사준다고 나갔는데 딸아이가 퉁명스럽게 자기가 어릴 때도 그렇게 해 주었냐고 묻더군요. 처음엔 농담처럼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자기는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면서 갑자기 서럽게 우는 겁니다.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있었는데 얼마나 서럽게 우는 지 눈에서 정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겁니다. 사위가 민망스러워 하면서 진정시키려고 했더니 “당신도 나에게 해 준 거 아무것도 없잖아?”라면서 소리를 지르더군요. 불난 집에 기름 끼얹은 꼴이 되었지요.

답 : 일단은 안심하십시오. 그렇게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토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니 말입니다. 아마 지금 따님이 그동안의 결혼생활, 아이를 키우는 동안 느꼈던 부담감을 비롯한 아주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해서 그랬을 겁니다. 남편(사위)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공격성을 표출할 정도였을테구요. 자녀(손주)에게나 표출하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고 자신에게 표출하지 않은 게 다행이죠. 자신에게 표출시키면 우울이나 자해로 드러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혼자 하는 속앓이 보 다 푸념이든 하소연이든 풀어내는 게 낫습니다. 다만 지금 따님이 쓰는 언어가 원망을 담은 공격언어라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여리고 어리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사실 푸념, 하소연, 넋두리라는 말은 자신의 신세를 누군가에게 풀어 놓는 것인데 ‘나 지금 힘들어’라는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는 ‘나-전달법(I-Message)’에 해당됩니다. 그럴 때는 어떤 해결이나 답변을 주기보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마음만 받아주면 됩니다. 따님의 ‘주관적 느낌’을 받아주라는 것일 뿐 어릴 적에 실제로 해 주었냐 아니냐를 따지는 ‘객관적 사실(Fact)’ 로 받아주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하고 가장 따뜻하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을 대상이 친정엄마니 그저 충분히 들어주시고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십시오.

문 : 충분히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흔히 상담하는 분들은 그렇게만 해도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기도 하거든요. 저도 교회에서 시행하는 상담 학교에 등록해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답 :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담자가 충분히 들어주었더니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해결했다면 그의 수준은 아주 높은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어렵지요. 그래도 가급적이면 우선은 그저 충분히 들어주는 일을 먼저 해 주십시오. 사람은 일반적으로 누적된 분 노가 차 있는 상태에선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생각 속에 빠져 있으면서 분노를 더 키우기도 합니다. 누군가 받아주면 감정이 누그러지고 보다 냉정한 이성이 작동되겠지요. 그 때 엄마로서 또 어른으로서 타이르고 어르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여리고 어린 사람은 남의 말 을 잘 듣지 않습니다. 타이르고 어르는 과정에서 따님이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수긍하는지의 여부를 유심히 살펴보시고 의미파악도 못하고 엄마의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면 그 때는 타이르고 어르는 수준 에서 보다 엄하고 단단히 일러주는 교육을 시행하셔야 합니다. 특히 자기말만 하려하거나 말을 가로막을 땐 말을 끝까지 듣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치셔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가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로부터 들은 적이 없어서이니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이라면 가르치십시오.†

이병준 목사
상담학 박사, 파란리본 카운슬 링&코칭, <다 큰 자녀 싸가지 코칭>, <니들이 결혼을 알어?>,
<우리 부부 어디서 잘못된 걸 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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