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에게 일 좀 시켰다고 화를 내는 며느리를 둔 부모에게

작성일2018-01-21

문 : 매년 여름이면 자식들이 휴가 때 맞춰 손주들과 함께 시골로 옵니다. 모처럼 집안에 생기가 돕니다. 그런데 어릴 때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냥 달려와서 안기던 손주들이 중고생이 된 이후부터는 인상을 잔뜩 쓰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만지작거립니다. 시골에 왔으니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합니다. 농사일이라는 게 늘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있어 아침 저녁에 밭으로 일을 나갔다 오면 그 때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그럴 땐 차라리 일이나 시키자 싶어 지난해에는 아이들을 일부러 밭으로 데리고 가서 고추 따기를 시켰더니 며느리가 난리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 일 시킨다고 말이죠. 제가 정말 잘못인가요?

답 :만약 손주가 학령기 이전 즉 유치원 정도 아이라면 모르겠거니와 성장해서 중고생이 되었다면 시골 할머니 댁에 와서 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부모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고 핵가족이 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농경시대에는 대가족 3대가 함께 모여 살았는데 산업화 되고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분리되어 나가면서 부모와 자식세대로만 구성된 핵가족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포함된 3대가 아닙니다. 시골에 오면 당연히 일을 하도록 가르쳤어야 하는데 가르치지 않는 것은 과잉된 사랑과 이기적 사랑입니다.

문 : 며느리가 그러더군요. 공부하느라 지친 아이들, 모처럼 시골에 와서 쉬게 해줘야 할 텐데 왜 일까지 시키냐고요. 며느리 말도 일리가 있기에 미안하긴 한데 마음 한편이 참 씁쓸합니다. 손주들 공부에 방해가 된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공부만 하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문제가 되지 않나요? 우리 자식들도 보면 공부만 잘했던 놈은 깍쟁이가 되었고(사실, 며느리가 이 깍쟁이 아들의 아내) 서글서글했던 녀석은 큰 사업을 하고 있고 지금도 저희에게 제일 잘하거든요.

답 :맞습니다. 공부가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된 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편리와 안락을 보장받는다는 말과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 미래는 공부라는 것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공부 그 자체는 컴퓨터나 인공지능(AI)이 대체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손주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인간관계의 능력을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지혜교육입니다.
일을 하려면 일에 대한 통찰력, 요령, 건강한 신체,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일 자체야 싫고 귀찮을 수도 있지만 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습니다. 최근 저희 상담실에는 이른바 청년이 된 자녀들이 쉽게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집에 틀어 박혀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컴퓨터나 휴대폰만 만지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일본말로 히키코모리)’가 된 자식들 문제로 상담 오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 : 네. 듣고 보니 일을 시키는 게 좋은 것이란 뜻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며느리입니다. 시골에서 일 시켰다고 다음부터 절대 안 데리고 온다고 하면 어찌하나요? 비약해서 명절에도 안 온다 하면 어떡하지요?

답 :걱정하지 마십시오. 며느리가 그렇게 나오더라도 철이 든 손주라면 스스로 올 겁니다. 도리어 손주들이 자기 부모를 향해 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지 않느냐고 따끔하게 일침을 줄 겁니다.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어느 기업에 입사하게 된 어느 아들인데요, 입사시험의 마지막 관문이 청소였습니다. 대부분 지원자들은 청소기를 먼저 돌리고 난 후에 물걸레질을 하는데 그 아이는 물걸레질을 먼저 하고 난 후에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그래서 인사 담당자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청소기를 먼저 돌리면 우 선 깨끗해 보이고 물걸레 청소하기도 좋 습니다.
그런데 청소과정에서 먼지가 날려서 청소하는 사람에게도 안 좋고 또 공중에 뜬 먼지가 나중에 가라앉으면서 금세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물걸레질을 먼저하면 미세먼지가 걸레에 묻으면서 큰 먼지만 남게 됩니다. 그 때 청소기를 돌리면 훨씬 더 깨끗하고 청소상태가 오래갑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지원자가 뽑힌 것 은 당연한 일이지요. 평 소에 집안일을 도와 청소를 하 면서 얻은 지혜였죠. 입사를 결정지은 그것이 청소였다면, 어릴 때부터 해 온 집안일이 주효한 것이니 안 시킬 이유가 없겠죠?†





이 병 준 목사
상담학 박사, 파란리본 셀프 힐링 연구소,
<다 큰 자녀 싸가지 코칭>, <니들이 결혼을 알어?>, <우리 부부 어디서 잘못된 걸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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