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검약과 저축생활
작성일2015-12-20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6~8)
오늘날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성실히 일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알뜰한 소비 생활을 유지하면서 착실히 저축을 이어가는 것이 가난한 삶의 생활유형이 된 반면, 그보다는 고도의 재테크를 해서 근로소득 외의 자산소득을 만들어내는 것이 부유한 삶의 생활유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자본주의가 양산시킨 부유한 삶을 향한 허상은 상당히 많은 중산층이 무모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015년 3월 8일 현재 기획재정부, 한국 은행,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가계부채를 나타내는 가계신용은 2005년 당시 542조8714억 원에서 지난해 1088조9814억 원으로 546조1100억 원(100.6%)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계의 수입을 나타내는 가계수지는 월 289만8000원에서 430만2000원으로 48.4% 느는 데 그쳤다. 가계 빚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소득증가 속도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을 제외한 실질소득을 감안하면 가계 빚과 소득의 증가속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저축은커녕 빚에 의존하며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청지기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자금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행동인가?
현재 우리의 사회적 경제 및 대안경제의 흐름은 장기적 모색이며 이 또한 언제 어떤 형태로 변경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의 불황에서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가계생활구조의 개선, 즉 ‘절약’과 ‘저축’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자금을 어떻게 저축하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행동인가? 저축성계좌 를 갖는 것이 영적인가? 또 갖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인가? 저축이나 보험은 우리에게 위험 신호인가?
그것들을 평가할 수 있는 성경적인 원리가 있는가? 등에 또 다른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디트리히 본회퍼는 “세상적인 부는 필요한 것에 사용하기 위해 주어졌지 욕구충족이나 쌓으라고 준 것이 아니다. 움켜쥐는 것은 우상숭배다”라고 설파한데서 그 방향성을 일정부분 가름해 주고 있다. 저축이 없는 상태에서 직업을 잃거나 예상 밖의 주요비용이 발생하면 빚을 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저축의 목적은 당장 써버리는 대신 미래에 생길 수 있는 일을 위해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버리느니라”(잠 21:20).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요셉은 다가오는 이집트의 기근에 대비하여 7년의 풍년 동안 수확의 20%를 저축했다. 이후 7년의 기근이 닥쳤을 때 준비해 둔 것으로 이집트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에게도 나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기근을 대비하지 않고 지금 잔치를 즐기는 것은 자원을 잘못 관리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 고 난 후 미래의 목적을 위해 수입의 다음 부분을 비율적으로 우선 저축하고, 남은 것으로 ‘절제(필요)소비’를 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욕구충족의 소비’를 하기 때문에 저축할 것이 남지 않는다.
1) 저축해야 하는 이유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6~8).
개미라 하더라도 여름에 식량을 준비해놓지 않으면 겨울에 고생할 것을 안다. 성경에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저축은 격려한다. 선교비전 트립이나 가족행사 등을 위해 단기적으로 저축할 수 있다. 요셉의 경우에서 보듯이 장기적인 저축으로 은퇴 후의 소득 감소를 대비할 수 있고, 자녀학자금을 위해 조직적으로 저축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목표를 가지고 저축할 수 있다. 이와 반면에 ‘저축하지 않는 이유’가 가진 것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나누어야 한다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라면 그것은 마가복음 12장의 가난한 과부와 고린도후서 8장에 나오는 마케 도니아 그리스도인의 무리의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종이나 준비와 절제의 부족 때문에 저축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이 결코 축복하지 않으신다.
2) 저축과 축적의 구분
‘저축’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미래의 필요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 게 기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축적’은 저축이 극단으로 간 것으로 재난을 대비 한다거나 필요를 보충하는 것 이상의 어떤 목적도 없이 쌓기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욕심 때문에, 단지 구두쇠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며 그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움켜쥐는 것의 예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눅 12:16~21)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렇듯 ‘축적’은 다른 사람을 충분히 도울 수 있고 도와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 요청을 외면하면서까지 자신의 재정적 독립을 위해 움켜쥐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저축과 축적의 차이는 단순히 금액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달려 있다.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따르면, 검약과 저축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삶의 예비이며,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어야지 창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의 대체품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검약과 저축은 돈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청지기적 권위를 발전시키는 훈련이다.†
정병일/ EPS청지기재정교실 대표, 정치학 박사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