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가 된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작성일2015-11-08

문 : 아이가 몇 년 째 집밖을 안 나가요. 꼭 고슴도치 같아요. 밝은 것을 피해 낮엔 캄캄한 파우치 속에 쏙 들어가 하루 종일 잠자고 밤에 깨어나 밤새도록 돌아다니고 먹이줄 때나 가시 안 세우지 조 금만 불편하면 씩씩대며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 말예요. 아들이 그럽니다. 낮엔 내내 커튼 치고 잠 만 자고 밤이 되면 밤새도록 게임하거나 그림 그리면서 멍청히 시간을 보냅니다. 누굴 만나려 나가 려고도 하지 않고 가족들이 다 모인 식탁에선 밥도 안 먹고 혼자 먹습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라도 시킬라치면 질색을 하고 조금만 싫은 소리하면 악다구니를 쓰고 덤벼듭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벌써 스물여섯이나 되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상담실을 몇 군데 다녔는데 그분들의 말씀은 아들이 큰 상처를 받아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상처받은 일은 없었거든요. 어쩌면 좋을까요?


답 : 상담실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일반 인구의 8%가 평생에 한 번 이상은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전쟁이나 재난 현장에서 사람이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끔찍한 모습을 보게 되거나 또 여성 의 경우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폭력, 성폭력 등과 같은 심각한 사건을 겪었을 때 나타납니다. 미국의 경우는 베트남 참전 병사의 약 30%가 이 증상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아드님도 혹시 그런 큰 상처가 될 만한 사건이 있었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삶을 포기한 것, 즉 자신의 내면적 성숙에 비해 외부 환경이 너무 크고 강하다고 느낄 때 아예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포 기하고 주저앉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밑 마음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육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오랫동안 무기력이 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며 그 속엔 ‘게으름’이 깔려 있습니다. 일본말로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우리말로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르는 증상의 특징입니다.



문 : 야단이라도 쳐서 밖으로 내보낼 생각도 해 보는데요.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 입을까 봐 함부 로 말을 못하겠어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거든요.

답 : 필요하면 야단이라도 쳐서 밖으로 내보내셔도 됩니다. 다만 하신 말투를 보면 정말 어머니 께서 그럴 각오와 용기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스물여섯이나 된 아들을 아이라 지칭하는 것도 그렇고 상처 입을까 봐 걱정한다는 말씀을 볼 때 그렇습니다. 야단을 칠 때는 거기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그것은 상처라기보다는 교육이며 부모의 분명한 기준과 원칙이 됩니다. 아이 입장에선 상처일지 몰라도 그건 성장 과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적절한 좌 절’입니다. 그러니 단호할 땐 단호하셔야 합니다.




문 :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답 : 아들에게는 새로운 행복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부모들이 생각했던 행복의 조건에는 생존, 즉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사셨 구요. 그 덕분에 자녀 세대는 그런 걱정 없이 성장했지만 정작 본인들이 느끼는 행복은 없습니다. 그저 부모가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켜 주었지만 행복을 느끼지는 못하고 삽니다. 최근 행복심리학 자들이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 네 가지는 낙관성, 자신감, 외향성, 자기효능감입니다. 즉 외부 조건 이라기보다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조건이죠. 따라서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방식을 접고 새로운 관계 패턴을 만드셔야 합니다.
우선, 가족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을 제시하십시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도 정하 고 식사는 모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만 하도록 하십시오. 개인적으로 밥 챙겨주는 것은 하지 않 으셔야 합니다. 아들을 환자취급해서 무한 돌봄만 제공하시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사 소한 일부터 시키십시오. 작은 성취를 반복해서 경험할수록 자신감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자신이 쓸모있다고 느끼는 자기효능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아드님의 지금 그 상황을 유전이나 환경 요인에 두지 마십시오. 행복은 스스로 배워 서 실천할 때 얻는 기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셔야 합니다.
물론, 여린 마음을 품어주는 것도 하셔야 하지만 그것은 어릴 때 필요한 것이고 성인 자녀의 경 우는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발달단계에 따라 부모의 양육, 교육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모님께서 좀 더 자 신감과 용기를 갖고 아드님을 독립시킬 준비를 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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