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중학교 생활, 어찌 해야 할까요?

작성일2018-07-15

문 : 초등학교 7학년이라고 생각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저에게 중학교는 정말 알 수 없는 세계였고, 지금도 그래요. 단지 학교가 달라진 것뿐인데 어찌나 혼란 스럽던지요.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공부는 또 왜 그리 알 수 없는 말들 만 가득한지요. 게다가 모든 것이 점수화 되어 있어서 제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점수였습니다. 자유체험활동, 봉사활동도 ‘생기부(생활기록 부)’에 기록될 것을 먼저 생각하고, 숨을 쉬는 것도 박자에 맞춰 쉬어야 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요. 이런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답 : 1년 내내 담임선생님 한 분께 공부를 배웠던 초등학교에 비하면 시간마다 다른 선생님께 다른 과목을 배우는 중학교는 강에서 바다로 나온 사람이 느끼는 자유와 혼란을 줄 수 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강과 바다의 차이가 아닐까요. 강은 한 나라의 지도로 충분하지만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세계지 도가 필요하지요.
강에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만 가면 문제가 없지만, 바다에선 목적지를 설정하고, 나침반으로 수시로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열심히 항해를 했는데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단지 ‘열심히 하자’는 성취욕과 경쟁심만으로는 공부라는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는데 충분하지 않아요. 숫자로 남는 ‘생기부’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체험하는 일과 봉사활동이 내 인생의 지도에 남기는 항해 흔적이지요. 모든 것이 점수로 남는다는 답답함보다는 내가 선택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내 표정과 내 생각을 다듬고 깎아서 숨겨진 나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조각가가 돌덩이를 깨부수면서 돌 속에 숨겨진 다윗의 얼굴과 근육을 만들어가는 일과 같답니다.
하루에 몇 분이라도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은 어떤 사람인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건 목적지에 맞춰 좌표를 수정하는 시간이죠.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몇 분을 내 마음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바꿔보세요. 답답함은 규칙으로, 혼란은 크게 꿈꾸는 자유로움으로 바뀌면서 내 모습이 바뀌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문 : 초등학생 때에는 단 한 번도 1등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저와 평균이 똑같은 친구가 한 명이 있었고, 학년 전체로는 평균이 저보다 높은 친구 가 몇 명 더 되었지요. 그 무언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어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성적이라니요?

답 : 열심히 노력했는데 나보다 더 잘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내가 넘어야 할 목표를 설정해주는 기준점이자 지칠 때 나를 깨워주는 자극제가 아닐까요? ‘난 나름대로 노트정리도 열심히 하고 공부 시간에도 다른 짓 하지 않고 선생님 설명만 듣고, 걸어 다니면서도 암기하고 노력했는데 저 애는 놀면서 공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은 자기평가에는 관대한데 남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한 편이 있어요. 그 마음이 타인의 성취에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하지요. 나보다 앞서 있는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인정해주세요. 그러면 질투하지 않고 편하게 더 노력할 수 있어요.
내가 느끼는 분노가 친구를 질투하는 마음이거나, 나를 비난하는 마음이면 노력하기보다 다른 이유를 찾아서 불평하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어요. 공부는 노력한 만큼 결과를 돌려주는 정직한 게임인 만큼 나보다 잘한 아이가 있다고 해서 내가 초등학교 때 쌓은 실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한 번이라도 1 등을 해 본 사람은 어떻게 하면 1등을 할 수 있는지 공부의 규칙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있어요. 하물며 초등학교에서 1등만 했다면 준비된 실력과 도구를 이미 갖고 있는 거예요. 더 넓은 곳에서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면서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자신을 다독여주세요. 경쟁자는 앞선 친구가 아닌 어제의 나입니다. 나를 격려하면서 하는 공부는 어렵지 않아요.

문 : 엄마는 남들이 다니는 학원 다 보내주고 과외도 시켜주고 해달라는 것 다 해주는데 왜 결과가 이 모양이냐고 혼을 냅니다. 엄마가 혼을 낼 때마다 ‘공부 같은 것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들고 싶은 충동도 느껴요. 이젠 노력 하는 것에 지쳐가는 것 같아요.

답 : 중학교에서 본 게임이 시작된 만큼 초등학교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믿는 엄마는 나보다 더 성적에 예민하고 초조해질 수 있어요. 엄마의 말을 나에 대한 기대로 들어주세요. ‘엄마가 뭐 더 도와줄 것 없니?’ 하는 마음을 “결과가 왜 이 모양이냐”고 말씀하신 거예요. 엄마의 말을 나를 혼내는 말로 듣게 되면 ‘나도 노력하는데 지쳤어. 공부 같은 것 안 해도 재미있는 일이 많아’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때 생각의 스위치를 바꾸는 거예요. 비난이 아닌 기대로 듣는 거죠. “엄마는 해주실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해주고 계세요. 제가 실수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고 말해보세요. 이렇게 생각의 스위치를 바꾸면 노력하는 것, 실수하는 것, 남보다 조금 성적이 덜 나오는 상황에서도 편하게 노력할 수 있어요. 어쨌든 난 성장하고 있고 배우고 있으니까요. †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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