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다음으로 자주 읽은 내 영성의 자양분”--이동원 목사가 고른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작성일2016-06-16

영국 버니언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전도자와 크리스천. 두란노 제공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구촌미니스트리네트워크(GMN) 이동원(사진) 원로목사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두 개의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두 개 모두 초상화가 들어있는데 왼쪽은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청교도 설교자인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이고, 오른쪽은 19세기 ‘설교의 황태자’로 불렸던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목사다. 같은 영국인이지만 두 사람의 시대적 간극은 200년이다. 이 목사는 왜 두 명의 초상화를 책상 뒤 벽에 걸어놓았을까. 공통분모는 한 권의 책이었다. ‘천로역정’. 버니언이 지은 이 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목회자가 스펄전 목사였다.

이동원 목사에게 천로역정은 각별하다. 신앙 입문 초반에 선교사에게서 우연히 영어판 천로역정을 선물 받았는데, 영한사전을 닳도록 찾아보며 읽었다고 한다. 그는 “(천로역정은) 내 신앙의 자양분이 됐다. 읽을 때마다 회복해야 할 영성의 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고 했다.

이 목사가 천로역정을 읽은 횟수는 100번이 넘는다. 그는 “설교 단상에 처음 오르는 새내기 목회자에게 천로역정을 반드시 권한다”며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우리 인생을 그대로 비춰준다”고 말했다.

1678년 초판이 나온 천로역정은 꿈의 형식을 빌어 스토리를 풀어낸다. ‘크리스천’이라는 남자가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 목사는 “천로역정이 강조하는 주제는 구원의 영성이다. 이 구원은 칭의를 넘어 성화를 다룬다”고 말했다.

“멸망의 도시에서 십자가까지의 거리는 전체 분량 중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구원 이후를 다룹니다. 크리스천이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욕망과 싸우고, 사탄의 도전 앞에서 거룩함을 이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요. 숱한 고난을 통해 성화를 이루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다시 필요한 영성이라 할 수 있어요.”

기독교 신학에서 구원의 영역은 ‘칭의’ ‘성화’ ‘영화’ 등 3요소로 구성된다. 이 목사는 “구원만 받고 책임 없이 살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끝까지 신앙생활을 완주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며 “천로역정은 그 완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가 다른 어떤 책보다 천로역정을 먼저 추천하는 이유는 개신교 영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순례기로 단테의 ‘신곡’도 있지만 이 책은 ‘지옥-연옥-천국’이라는 구조 속에서 로마가톨릭의 영성을 말하고 있기에 개신교인들에겐 천로역정이 제격이다.

천로역정은 한국교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Gale, 1863∼1937)이 1895년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가 한글로 번역한 ‘텬로력뎡’을 길선주(1869∼1935) 목사가 읽고 감명을 받아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었다.

이 목사는 “성결교의 이성봉(1900∼1965) 목사도 전국을 다니며 천로역정 부흥회를 열었다”며 “그가 ‘멸망의 도시’를 장차 망할 성이란 뜻으로 ‘장망성’이라 표현한 것은 당시로선 탁월한 번역”이라고 말했다.

이동원 목사는 최근 1년 내내 천로역정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오는 9월에는 경기도 가평군 필그림하우스 내에 ‘천로역정 순례공원’도 완성된다고 했다. 이 목사의 천로역정 사랑은 존 버니언의 전기(‘존 번연의 순례자 영성’)가 최근 출간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순례공원 개원식에는 전기의 저자인 피터 모든 영국 스펄전대 교수도 내한할 예정이다.

1895년 첫 천로역정 출간 후 국내엔 수많은 천로역정이 선을 보였다. 15일 한 인터넷서점에 ‘천로역정’을 검색하자 137건이 검색됐다. 고전(古典) 때문에 고전(苦戰)하는 독자들은 어떤 책을 잡아야 할까. 이 목사의 대답은 이랬다. “만화로 읽어도 좋아요.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한 다음 원본을 침착하게 읽어보자구요.”

성남=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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