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웅 참좋은교회 은퇴목사, 신촌 땅부잣집 아들서 캠퍼스 전도자로

작성일2017-08-31

이종웅 참좋은교회 은퇴목사가 지난 24일 자신이 운영하는 컵밥집과 같은 체인점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컵밥집에서 컵밥을 사서 들어 보이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백발의 노신사가 한 컵밥집에서 우산을 쓴 채 제육볶음밥을 주문했다. 한때 서울 신촌 로터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땅 부자였던 그는 사업 실패 후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돼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참좋은교회 이종웅(73) 은퇴목사의 이야기다.

이 목사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서울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했고 65년 서울대 공대 기독학생회 초대회장이 됐다. 서울대 11개 단과대가 모여 만든 기독학생회 초대 연합회장도 맡았다.

졸업 직후인 70년 할아버지로부터 신촌역 앞 건물을 물려받아 광신서점을 차렸다. 당시 신촌 로터리 3분의 1가량이 집안 소유였다. 28세이던 72년에는 경기도 화성시 화도중을 인수해 4대 교장을 지냈다.


이 목사는 신촌 일대에 의류 대리점을 여럿 차리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종합건설 회사를 인수해 강원 지역 도로포장을 도맡아 했고 83년에는 홍대입구역 앞에 서교호텔을 세웠다. 호텔이 흑자를 내자 85년 신촌 그랜드마트의 전신인 크리스탈 백화점을 지었다.

이 목사의 첫 시련은 이때 찾아왔다. 백화점 분양 실패 이후 직영을 하며 매년 50여억원의 적자를 냈다. 부도가 났고 90년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서 3개월을 복역한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호텔 사장할 때 편안해하더니 평안하더냐.”

구치소 막내로 수감자들의 설거지를 도맡아하던 이 목사에게 하나님이 들려준 얘기다. 이 목사는 “지금까지 편리를 위해 살았지 평안을 위해 살아온 적은 없었다”고 반성했다.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를 때면 옆방 수감자들도 창살을 붙들고 함께 눈물 흘렸다.

두 번째 시련도 곧 찾아왔다. 74년 잠시 앓았던 콩팥 통증이 출소 후 재발했고 93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목사는 중환자실에서 하나님 앞에 다시 섰다. 하나님은 “네가 전도한 사람 10명을 써 보아라”고 말했지만 한 명도 쓸 수 없었다.

다음 해 서울대에서 노방 전도를 시작했다. 돈과 건강 모두를 잃은 후였다. 캠퍼스 계단에 걸터앉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한 청년이 이 목사를 따라 예수님 믿기를 약속하고 나서야 아팠던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이 목사는 “백화점과 호텔 사장도 해 봤지만 그때와 같은 감동이 몰려온 적은 없었다”며 “한 영혼이 들어오면 천국에서 잔치가 일어난다고 하는 게 이 말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이 목사의 캠퍼스 사역은 거침없었다. 서울대 기독교수기도회 설립과 문화관 대강당 전도집회, 기독인 오리엔테이션 등을 주도했다. 98년에는 지금의 참좋은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는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하고 신앙 모임 장소를 제공하는 등 대학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 목사가 붙잡고 있는 성경 구절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그는 삶의 밑바닥에서 비로소 빛을 찾았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컵밥 장사를 시작했다.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적은 돈이라도 모아 이웃을 도울 계획이라고 한다. 삶을 반추하며 그를 웃게 만든 순간은 돈도 명예도 아닌 단 한 명의 전도였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07911&code=23111641&sid1=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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