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기다리세요

작성일2018-02-28

부모님은 다시 이사를 가셨습니다. 이번에는 북쪽이었습니다. 의정부에서도 한참을 더 가서 동두천을 지나면, 전곡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부모님은 교회를 지으시고 목회를 이어가셨습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동생은 바로 전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전학 가는 것이 싫어서 고등학교만은 한 한교를 다니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이제부터 제가 감당해야 할 고생길이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5시에 전곡에서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의정부까지 가면 거기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독립문에 있는 대신고등학교까지 무려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학교 가는 시간2시간 30분, 그리고 집에 오는 시간 2시간 30분. 그렇게 저는 하루에 다섯 시간을 등하교 시간으로 허비해야 했습니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가면 밤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차에서 공부하고 기도도 했지만, 한 달, 두달 시간이 지나자 몸은 천천히 지쳐만 갔고 차를 타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옷을 챙겨 입은 후에 무거운 책가방에 도시락 3개까지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갑니다. 그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몇 명 있었고 학생은 저 혼자였습니다. 아직 히터도 틀지 않은 새벽 첫 버스를 타면 마치 차가운 얼음 위에 맨 살을 올려놓는 듯한 느낌으로 버스 의자에 앉게 됩니다. 냉동차에 탄 것처럼 몸을 떨면서도 어느새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몸이라는 것이 놀라워서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의정부에 내릴 즈음이 되면 대다수 눈이 떠졌지만, 이따금 저는 내릴 곳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무척이나 추운 새벽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비몽사몽간에 버스에 올랐고 자리를 잡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잤을까요? 눈을 떠보니 버스가 벌써 의정부에 도착해 뒷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또 내리는 곳을 놓칠까봐 부리나케 내렸습니다.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곳은 저의 목적지인 의정부가 아니라 그 중간 즈음인 동두천이었던 것입니다. 절반 밖에 오지 않았는데 다 온줄 착각하여 성급하게 내려 버린 것입니다. 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한 시간 후에 올 다음 버스를 생각하니, 이 추운 날씨와 지각까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새벽의 어둠보다 더 짙은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제가 방금 내린 그 버스가 아직 출발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내린지 상당히 시간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다시 그 버스로 달려갔습니다. 버스 기사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잘못 내렸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버스 기사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저 뒤에 있는 할머니가 한사코 ‘저 학생 여기 잘못 내렸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며 감사는 저 할머니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가 누구신지 몰랐지만, 그 할머니는 새벽마다 저를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가자고 재촉하는 상황 속에서도 저를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그 힘들고 추웠던 겨울, 새벽의 제 마음을 그 어떤 뜨거운 전열기보다 따뜻하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인생을 참 빠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10분이면 머리를 감고 옷을 입으며, 밥도 10분 이상 먹지 않습니다. 약속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시간을 아껴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하지만 세상의 성공은 급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에게 올지 몰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기다리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당신의 일을 급하게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특히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위대한 일에서는 더욱 그러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그분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셨습니다.

최근에 저는 셀 리더 보고서를 하나 읽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셀이라는 작은 모임을 통해서 삶을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눈 내용을 셀 리더는 담임목사인 저에게 보내줍니다. 그러면 저는 그 내용을 읽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주에는 그 날 설교 내용에 맞추어서 자신에게 ‘결정적인 말 한마디’가 무엇이었는지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교회 가족들의 다채로운 ‘결정적인 말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늘 늦게 일어나고 삶에서 낙망하여 반복되는 슬럼프 속에서도 다시 힘을 내어서 자신이 일어 날 수 있도록 도와준 담당 전도사님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거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구나.”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첫 번째 특징이 ‘오래참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요, 그 사람이야말로 십자가의 예수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다려 봅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적인 태도로 있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열매를 소망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기다립시다. 탕자를 기다리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님의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수련회와 캠프로 8월의 무더운 더위 속에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이 땅의 소중한 모든 동역자들에게 이 부족한 글을 바칩니다.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다가올 가을, 영혼의 추수가 일어날 그 눈물 나고 감동적인 그 날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