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로

작성일2017-07-23

아내는 왜 제 방 창가에 매달마다 다른 꽃 화분을 놓아주었을까요? 아내는 왜 제 방 창가에 새들이 먹을 수 있는 모이통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제 방의 창문이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몸이 아파 수년 동안 길을 잃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로 그 캄캄했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지금도 눈물이 맺힙니다.

일요일 밤이면 거실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아내와 딸아이들의 웃음소리였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 누워있는 저의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때때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구나’ 하는 생각에 막막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일요일 밤에 들려오는 가족의 웃음소리에 오히려 안도감이 생겼던 것은 왜였을까요? 남편이 병들어 누워있다고, 아내가 슬픔에만 잠겨있다면 저는 더 슬펐을 것입니다. 아빠가 아프다고 어린 딸들이 의기소침해 있다면 저는 더 슬펐을 것입니다. 안도감이 생겼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저 때문에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철없는 어린 딸들도 많이 울었고요.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곳은 제 방의 커다란 창문이었습니다. 손만 뻗으면 나뭇잎이 닿을 수 있는 창문입니다. 창문 가까운 곳에 있는 벚나무들을 바라보며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봄이 오면 어린 딸 손을 잡고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풀나풀 떨어지는하얀 벚꽃을 바라보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캄캄한 시간 동안 벚꽃은 무심히 피어났고 무심히 지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제 방 창가에 꽃 화분을 올려주었습니다. 꽃 화분은 한 달 간격으로 바뀌었습니다. 봄이면 수선화와 마가렛이나 튤립이 피어났고, 여름이면 메리골드 보이나 페츄니아가 피어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백일홍이나 과꽃이 피어났으며, 겨울이면 동백꽃이나 시클라멘이나 포인세티아가 피어났습니다. 아주 가끔씩은 영원히 시들지도 않고 영원히 지지도 않는 꽃들이 제 방 창가에선 피어났습니다.

화분이 바뀔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형형색색의 꽃들은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떤 날은 저를 향해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방 창가엔 시시각각으로 많은 새들이 날아왔습니다. 아내가 창가에 만들어 놓은 새 모이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새 모이통 가득 먹이를 담아주었습니다. 창 밖에 펼쳐져 있는 숲속에서 어떤 날은 곤줄박이와 박새와 멧새들이 날아왔고, 어떤 날은 직박구리와 어치와 후투티가 날아왔습니다. 아주 가끔씩 휘파람새나 호랑쥐빠귀가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분주히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며, 먹이를 먹다가 덩치 큰 새들이 날아오면 꽁지가 빠져라 줄행랑치는 작은 새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웃기도 했습니다. 저를 위로하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새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왜 제 방 창가에 매달마다 다른 꽃 화분을 놓아주었을까요? 아내는 왜 제 방 창가에 새들이 먹을 수 있는 모이통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제 방의 창문이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캄캄한 방에 누워 제가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곤 오직 창문 밖에 없다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저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위로는 함께 울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로는 단지 함께 울어주는 것만이 아님을 아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한 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금은 담담한 모습으로 생(生)의 에너지, 즉 살아있음의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것도 진정한 위로임을 아내를 통해 알았습니다. 아내가 밤낮으로 제 손만 잡고 눈물지었더라면 저는 더 빨리 일어서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 모습 저 모습으로 깊은 깨달음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철환 (소설가)

작품으로는 430만 명의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 1,2,3>과 <행복한 고물상>과 <위로>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등 총 23권이 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10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 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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