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작성일2017-04-16

코스모스가 피어나 한 시절 제 몫을 아름답게 마치고 스러질 무렵, 정화는 그들 곁을 떠나갔다. 그녀의 어린 딸 정화가 하늘나라로 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정화를 그리워했던 시간은 10년도 더 지나버린 것 같았다.
정화가 떠나간 후 그녀는 거의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다. 길에서 정화만한 아이를 보기만 해도 그녀의 몸과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그녀의 남편이 모두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정화의 모습을 담아 놓은 비디오를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넋을 잃고 정화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정화가 딸기색 치마를 입고 풀밭을 걷는 모습은 보고 또 보아도 천사의 모습이었다. 그런 정화를 바라보며 끌어안은 베개는 매일같이 그녀의 눈물을 먹고 살았다.
그녀는 남편 앞에서는 그 테이프를 보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가 정화를 보며 우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의 남편은 정화를 하루 빨리 잊으려는 듯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어느 때 그녀는 그런 남편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정화의 생일날 아침, 그녀는 정화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준비했다. 정화 생일인지도 모르고 작업실로 가는 남편에게 케이크라도 사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문득 정화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정화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가 보이지 않았다. 녹음기에 끼워둔 채로 오랫동안 빼본 적이 없는 테이프가 없어질 리가 없었다.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녀의 눈에선 눈물부터 흘러내렸다. 세 시간이 넘도록 테이프를 찾다가 그녀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남편이 돌아왔다. 그녀는 설움에 복받쳐 현관에 서 있는 남편을 끌어안았다.
“왜 그래, 정인아. 무슨 일이야?”
“정화 노래 테이프가 없어졌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응, 그거? 내가 말을 안 했구나. 내가 가지고 나갔어. 자, 여기 있잖아.”
남편은 주머니에서 정화의 노래 테이프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들고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정화가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정인아, 이거 받아.”
남편은 하얀 종이에 싸인 물건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고개 숙인 남편의 눈도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상자의 덮개를 여는 순간,
그녀는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자 안에는 정화가 있었다. 정화와 똑같이 생긴 밀랍 인형이었다.
활짝 웃고 있는 그 인형은 눈이며 코, 입, 얼굴 생김새까지 정화를 꼭 닮았다. 정화는 다섯 살 때 생일 선물로 받은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엔 빨간색 머리 끈이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그녀가 정화에게 입을 맞췄을 때, 신기하게도 정화의 아랫입술이 스위치처럼 안으로 들어가며 정화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화가 부른 생일축하 노래였다. 숨 넘어 갈듯 깔깔대는 정화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작업실에 정화 사진 갖다 놓고 여러 달 동안 만든 거야. 사진이라서 조각하기가 힘들었어. 열 번은 망쳤나 봐. 우리 정화를 많이 닮았지?”
그녀는 목이 메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인아, 정화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우리 마음 아파하지 말자. 우리는 정화 하나를 잃었지만, 정화는 엄마하고 아빠 둘을 잃었잖아…….”
밀랍 인형의 받침대에는 조그맣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화야,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거야.’
그날 밤 그녀는 정화를 식탁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남편이 사온 정화의 생일 케이크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은 그녀가 껐지만 노래는 정화가
불렀다.
그녀는 그날 밤 내내 정화를 꼭 끌어안고 잤다. 정화가 떠난 후 처음으로 편안한 잠이었다.†

이철환 (소설가)

작품으로는 430만 명의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 1,2,3>과 <행복한 고물상>과 <위로>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등 총 23권이 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10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 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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