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채 목사의 거룩한 성품과 습관 <14> 생명을 부르는 말

작성일2020-01-02

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25일 성탄절 예배 후 목회자 자녀 24명에게 선물을 주며 축복과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다. 중앙성결교회 제공

어느 시골 성당 주일 미사에서 한 소년이 사제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만 실수로 포도주병을 떨어뜨렸습니다. 화난 사제는 소년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단에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마!” 이 소년은 훗날 유고슬라비아를 수십년간 지배한 공산주의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였습니다.

어느 큰 도시 성당에서도 한 소년이 주교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이 소년도 포도주병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주교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단다. 너는 언젠가 좋은 사제가 될 거야.” 이 말을 들은 소년은 훗날 대주교가 된 풀턴 쉰입니다. 쉽게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생명을 낳을 수도 있고 사망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혀의 능력

좋지 않은 말은 사람의 영혼을 시들게 하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인간의 혀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혀를 칼이나 총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타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이 더 무서운 건 사정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은 외상도 없이 마음 깊은 곳을 찌릅니다. 폭탄처럼 한순간에 여러 사람을 죽입니다.

말은 씨앗과 같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 행복 성공 사랑 지혜 평안 등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이에 맞는 좋은 말을 심어야 합니다. 격려의 말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을 세우지만, 비난의 말은 모두를 파멸시킵니다. 우리는 배설하는 말이 아닌 배려하는 말, 무너뜨리는 말이 아닌 세우는 말, 경박한 말이 아닌 품위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생명을 부르는 하나님의 말씀

말에 능력이 있는 건 말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적인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했고 말씀으로 우주를 운영하며 말씀으로 심판할 것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생명을 부르는 능력’입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에 임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생명을 부르는 말’은 우리가 반복해 훈련하고 길들여야 할 거룩한 습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는 이미 하나님 말씀의 창조적 능력도 회복했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일 뿐 아니라 ‘말의 힘을 믿는 종교’입니다. 바울은 말의 고백이 구원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이제 우리의 말은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먼저 이사야가 제단 숯불에 입술을 지진 것처럼 입술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뒤에 성령이 가르치는 대로 말하며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게 말하는 훈련을 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하나님 말씀을 내 말에 넣어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 그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말, 믿음과 은혜의 말, 생명과 사랑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평안할지어다” “네가 반드시 승리하리라” “빛을 발하라”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 등 구체적 삶 속에서 말로 축복을 풀어 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흘러야 할 기독교인의 입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현실의 충만한 복은 혀를 절제하고 선한 말을 할 때 주어집니다. 야고보 서신은 혀를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잠언에서도 바른 언어생활을 교훈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말은 누군가를 치유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 그러므로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춰 생각해야 합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 한담을 피하고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 20:19) 덕스러운 좋은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말은 곧 부메랑입니다. 남을 축복하면 내게 복이 오고, 남을 저주하면 내게 악이 돼 돌아옵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이 곧 기도가 됩니다. 가나안 정탐꾼 중 10명이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았을 때, 갈렙과 여호수아는 긍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대로 응답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말은 곧 심판의 기준입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영원한 복을 받도록 초대된 우리는 ‘생명을 부르는 말’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창조주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이 가진 권세로 생명을 부르는 말을 할 때 거룩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5573&code=23111413&sid1=mco

한기채 (목사)

미국 밴더빌트대 철학박사(PhD). 서울신학대 교수 역임. 현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부총회장.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