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때를 따라 아름답게

작성일2019-01-06

새해가 밝아오면 지난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기대로 가득해진다. 인생은 스쳐 지나가는 작은 순간들이 쌓여 이루어진다. 즉 인생이란 시간을 의미하며,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시공간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문명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공간의 이해와 변형의 주체였다. 근대 문명화의 역사는 인간이 공간을 계산해 통제하고 변형시키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들고 길과 터널을 놓으며 말이다.

문명이 공간을 정복하며 시간을 가속할지라도, 시간은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인간은 시간에 관한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만물은 바뀌고 인간은 늙어 소멸하고 만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란 그저 공간의 변화를 통한 간접 인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시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유는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다’는 속담이다. 이는 곧 시간이 인간 의지의 밖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구 사상사에서 시간 탐구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사람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는 ‘참회록’에서 “모두가 시간을 느끼지만, 그 존재를 측정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다”는 역설을 말하며 시간에 대한 개념 이해를 ‘무엇’에서 ‘어디’로 돌린다. 그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는 통상의 관념 대신 미래(종말)에서 현재로 시간이 거꾸로 역류한다고 인식했다. 이때 우리는 정처 없이 시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미래의 희망을 능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의 대부분은 미래 상황을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이다. 전도서 3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이 시간의 차원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미래에 하나님이 약속한 아름다운 때(미래)를 기대하며, 비록 보이지 않지만 그 언약을 신뢰하고 이때(현재)를 인내하며 아름답게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시간관 덕에 우리는 유한한 육신과 세상의 욕심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에 소원을 두고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안목을 갖게 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영원을 꿈꾸며 의미를 찾는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름답지 못한 현실에서 아름다운 이상을 꿈꿀 수 있을까. 기독교인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 속의 언약을 신뢰한다. 인간은 이상(ideal)과 현실(reality)의 양자 가운데 늘 갈등한다. 사실 양자는 늘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 가운데 이상을 품는 것은 가능성(possibility)보다 더 중요한 방향성(direction)을 제시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며 미래를 현재화한다. 미래 비전을 현재로 끌어와 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는 불의와 죄악이 다스리는 현실의 참모습을 직시하게 만든다. 따라서 오늘의 현실은 이 희망의 빛 가운데 ‘대세’라는 모습으로 위장한 거짓을 드러낸다. 또한 그 희망의 언어는 오늘날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변혁돼야 하는지 그 밑그림과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준다.

개인적으로 적용해보자면 내가 꿈꾸는 희망은 그렇게 되길 막연하게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 바람이 창조주의 뜻 가운데 올바른 이상인지 점검하고, 이를 위해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는다. 이처럼 비전이란 나와 세상의 이상을 오늘로 끌어오는 사고방식이자 삶의 태도다.

새해 황금돼지가 상징하는 소유의 축복을 넘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게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자. 올 한 해 그의 나라가 내 삶과 가정, 일에서 어떻게 스며들지 기대하고 다짐하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한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53750&code=23111413&sid1=mco

윤영훈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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