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

작성일2017-08-29

붉은 개미의 눈에는 ‘덫’이 ‘빛’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개미의 모습을 통해 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빛인 줄 알고 개미처럼 덫을 물어 날랐던 적이 많았습니다. 덫을 놓는 세상도 문제였지만 빛을 탐한 제가 더 문제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방은 북한산과 맞닿아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느티나무가지가 닿는 곳입니다. 바람에 수런거리는 느티나무 소리는 아름다웠습니다. 가까이 있는 스트로브잣나무에 잣이 몇 개 열리면 청솔모와 다람쥐가 놀러와 새벽부터 소란을 피웠습니다. 곤줄박이 한 마리가 창문으로 날아와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고, 햇볕 좋은 창가에 이불을 널어놓으면 칠성무당벌레들이 날아와 주홍빛 꽃무늬를 점점이 수놓기도 했습니다. 봄이면 딱따구리들이 날아와 온종일 나무를 쪼아댑니다. 주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저는 세상일로 번잡해진 마음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산이 가까운 탓에 제 방에는 붉은 개미들도 많았습니다. 가끔씩 보이는 개미가 아니라, 개미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내가 제 방으로 들어와 손가락으로 개미를 꾹꾹 누르면, 그러지 말라고, 아내를 말렸습니다. 먹고살겠다고 먹이를 찾아 고물거리는 개미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방에 떨어져 있는 과자부스러기를 부지런히 물어 나르는 개미를 바라보며, 삶의 엄숙함을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욕심은 죽음을 나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개미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어떤 날은 개미가 제 다리 위를 걸어 다녔고, 어떤 날은 팔뚝 위를 걸어 다녔습니다. 방에 누우면 제 목을 타고 올라오는 개미도 있었습니다. 개미가 머지않아 제 귓구멍 속으로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잠든 사이 제 귓구멍 속을 들락거렸던 개미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개미들은 동굴을 좋아하니까요.

뭔가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았지만 대책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개미 없애는 약을 아내가 사왔습니다만 아내를 설득해 개미 약을 서랍장에 넣어두었습니다. 개미 때문에 죽었다는 사람은 못 봤으니 좀 더 참아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토피가 있는 제 작은딸아이를 개미들이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아이 여린 살갗이 불긋불긋했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습니다.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개미 약을 꺼냈습니다. 개미 약에서 비릿한 오징어 냄새가 났습니다. 개미 약은 아주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졌는데, 개미가 입에 물고 가기 딱 좋은 크기였습니다. 먹이를 위장한 죽음의 알갱이였습니다. 종이 위에 동전크기만큼 개미 약을 쏟아놓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많은 개미들이 저와 함께 살고 있었는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두 줄로 무리를 지어 방바닥에서 천장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한 줄은 먹이를 물고 개미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 줄은 개미집에서 먹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개미들은 이틀 동안 부지런히 죽음을 날랐습니다. 삼일 째 되는 날부터 방바닥 여기저기에 개미 시체가 널브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나흘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여왕개미로 보이는 날개 달린 개미 몇 마리가 제법 커다란 몸을 뒤뚱거리며 간신히 방안을 기어 다녔습니다. 그 날 이후 단 한 마리의 개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동물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론 개미가 어리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맛있는 먹이인 줄 알고 독약을 물고 갔으니까요. 평소에는 네다섯 마리씩 보이던 개미들이 총 출동해서, 이게 웬 떡이냐 춤을 추며 이틀 동안 독약을 물어 날랐으니까요. 개미도 인간처럼 욕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먹을 것을 쌓아두고도 먹을 것을 걱정하는 인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붉은 개미의 눈에는 ‘덫’이 ‘빛’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개미의 모습을 통해 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빛인 줄 알고 개미처럼 덫을 물어 날랐던 적이 많았습니다. 덫을 놓는 세상도 문제였지만 빛을 탐한 제가 더 문제였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제겐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대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철환 (소설가)

작품으로는 430만 명의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 1,2,3>과 <행복한 고물상>과 <위로>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등 총 23권이 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10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 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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