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㉝|그의 별을 보고 왔노라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쌍둥이였다. 그러나 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헷 족속의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아 그 부모의 근심이 되었고(창 26:34~35), 결국 이삭의 장자권은 야곱에게로 넘어갔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늘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심히 즐거워하며 그의 환난에 끼어들어 약탈을 감행했다.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리라”(겔 35:15).
에돔은 결국 돌이키기 어려운 저주를 받았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옵 1:4).
그런데 그 에돔 즉 이두매 출신의 헤롯이 유대 왕으로 유대를 다스리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유대인에게는 큰 치욕인데 그는 유대인 아내와 아들 셋을 처형하고, 미소년들과 환락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져서 앞뒤를 분간할 수 없으면, 주절거리는 무당을 찾아가고 속살거리는 마술사에게 가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묻는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사 8:19).
그러다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들게 된다.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1~22).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는 그분이 흑암 속에서 빛을 준비하신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시 112:4).
다윗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시 139:11).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그 밤도 절망과 치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유대뿐만 아니라 이방의 모든 나라들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마(헬: Ρ.μη, 야수)’라는 짐승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런 흑암 중에서 빛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정직한 자에게는
그리고 아주 먼 곳에서 그 빛을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 2:1~2).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헬라어 ‘마고스(μ.γο.)’로 되어 있고 이는 당시 바사의 점성술사 또는 천문학자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이들은 무당이나 마술사처럼 함부로 말하고 미혹하는 점쟁이가 아니라 천체를 관측하고 분석한 기상 자료들을 국정에 참고하도록 보고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방의 박사들’이 발견했다는 그 새로운 별이 <삼국사기>에도 나와 있어 관심을 끈다.
“혁거세 거서간 54년, 패성(.星)이 하고(河鼓)에 나타났다.”(<삼국사기> 신라본기)
‘패성’은 혜성을 말하고 ‘하고’는 은하수이다. 혁거세 거서간 54년은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BC 4년과 같은 해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혜성을 의미하는 글자 ‘패(.)’를 파자하면 ‘십자(十字)’가 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 박사들이 바사(波斯, Persia)에서 왔다면 그 ‘바사’도 우리와 관계가 깊다.
“금관 호계사의 바사(婆娑) 석탑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으로 되어 있을 때 수로왕의 비(妃) 허황옥이 동한(東漢) 건무24년 갑신(AD 48)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삼국유사> 금관성 바사석탑)
당시 동방에서는 ‘바사(波斯)’를 ‘바사(婆娑)’로 표기했다. 뿐만 아니라 AD 80년에 즉위한 신라의 제5대 니사금은 그 이름이 바사(婆娑)였다.
“바사 니사금 23년(AD 102), 금관국 수로왕은 년로하고 지식이 많으니 그를 불러서 묻자고 하여 수로왕을 초빙했다. 수로왕이 의논을 바로 세워 다투는 일을 조정해 주었으므로 수로왕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BC 4년 그 바사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때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고, 특히 놀란 자는 바로 헤롯 왕 자신이었다. 그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들여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미가서’에 기록된 말씀대로 베들레헴을 지목해 보고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 2:6).
헤롯 왕은 박사들을 만나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이 왕궁을 나서자 다시 동방에서 보던 별이 나타나 길을 인도했다. 별이 멈추어 서자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가 아기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후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보다 앞서 그 어둠 속의 빛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후일 헬라 출신의 의원 누가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직접 인터뷰해 귀중한 몇 장면을 취재했다. 그에 의하면 당시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여관을 못 구하여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출산을 했다. 나중에 ‘집’으로 옮기기 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가장 먼저 찾아가 경배한 사람들은 밤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9~10).
그것은 곧 메시야 탄생의 놀라운 소식이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1~12).
수많은 천군(天軍, heavenly host)이 하나님을 찬송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천군과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은 속히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 이루어진 일들을 보자며 달려가 구유에 누인 아기에게 경배하고,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그대로 전하니 그들이 놀랍게 여겼다.

부르짖는 자에게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동방에서 온 박사들 외에도 아기 예수를 만나는 감격을 체험하고 그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한 두 사람이 있었다. 그 하나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 시므온이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눅 2:26~27).
마리아와 요셉이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드리기 위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였다. 본래는 1년 된 어린 양을 바쳐야 하나 그럴 형편이 안 되면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했으므로, 가난한 마리아와 요셉은 비둘기 한 쌍을 정결의 예물로 바치기 위해 성전에 갔다가 시므온을 만난 것이다. 그들을 만난 시므온이 놀라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9~32).
또 한 사람은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인데,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어 혼자 살아온 84세의 여 선지자였다.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던 안나는 아기 예수와 그 부모가 성전에 올라갔을 때 나아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에 대하여 증언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고통을 당하면서도 간절하게 구원을 바라던 자들이 빛을 본 것이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13~15).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사 8:22).
왜 하나님은 모태에서 갓 나온 아기에게 고통의 광야를 준비해 놓으신 것일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양육 방법이었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의 수준까지 자라가야 했다. 흙으로 빚어진 사람이 하나님의 수준까지 이르게 되려면 엄청난 양육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했고, 그 분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수하는 방법은 바로 ‘고통’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그런 혹독한 과정을 견디어 내게 하는 것은 곧 ‘말씀’이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그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그러나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그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심지어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조차도 그 자식을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다. 그 자신의 행위로 자식에게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레위인(민 8:18)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본을 보이지 못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이끌도록 위임받은 레위인 역시 이스라엘 자손을 바로 이끌지 못하고 흑암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내버려 두었다.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말 2:8).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렘 7:13).
하나님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셨다.
“내가 너희 열조를 에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렘 11:7~8, 개역한글).
하나님은 그래도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렘 29:19, 개역한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하게 울렸고, 사람들은 세상의 소리와 무당의 소리와 마술사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캄캄한 흑암 속에서 살아갈 때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그분을 보면 훈련받는 자가 정신 차려 주목해야 할 목표가 보인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은 사람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알고, 따르면 모든 훈련의 과정을 통과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존재가 되어 그분과 마주 설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사이가 되려면 꿇거나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펴고 마주 서야 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그래야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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