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㉙|재에서 구르며 슬퍼하라

셈의 둘째 아들 앗수르(Asshur, 창 10:22)는 디베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의 상류에 고대 국가 앗수르를 세웠다. 앗수르는 두 강의 중류 지역에 있는 바벨론과 늘 경쟁 관계에 있었고, 바벨론의 니므롯이 앗수르에 진출해 니느웨를 건설하면서 우상의 문화에 물들기 시작했다(창 10:11). BC 1300년경 앗수르는 독립했고 더 강해져서 BC 859년 즉위한 살만에셀 Ⅲ세는 바벨론을 지배하게 되었다.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외친 BC 760년은 앗술단 Ⅲ세 때였다. 왕과 모든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금식하며 회개하여 멸망을 면한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 Ⅲ세 때에 더욱 강성해졌다. 그 아들 살만에셀 Ⅴ세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각국 연합군의 병사들로 사마리아 여자들을 강간케 하여 혈통을 자랑하던 북 이스라엘을 ‘잡종의 나라’로 만들었다.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왕하 17:24).
앗술단 Ⅲ세 때에 재에 앉아 회개했던 앗수르가 강성해져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막대기’(사 10:5) 역할을 했으나 다시 교만해져 타락해 가는 것을 보고 BC 660년 엘고스의 선지자 ‘나훔’이 앗수르와 그 도성 니느웨의 멸망을 다시 예언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나 2:13).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BC 701년 유다의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쳐서 실패했다. 니느웨로 돌아간 산헤립은 반역자들에게 쫓겨 아라랏 땅으로 도망가서 죽었다(왕하 19:35~37). 그리고 BC 612년 앗수르는 나훔 선지자가 예고한 대로 메대와 바벨론 등 주변 국가들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유다는 머리를 치켜드는 바벨론 때문에 또 불안해졌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습 1:14~16).
유다 왕실의 귀족이었던 그는 ‘만군의 여호와’께 소망을 둔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습 2:9).
그들의 이런 불안은 모두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이사야 등 많은 선지자들을 죽인 악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 15:4).

아프고 답답하여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북쪽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슬픔을 자신의 삶으로 대변한 ‘눈물의 선지자’였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렘 9:1).
BC 627년 겨우 20세에 부르심을 받은 예레미야는 아직 어려서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했으나(렘 1:6) 하나님이 강권하시므로 어쩔 수 없이 사역에 나섰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1:8).
그러나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불길한 징조들뿐이었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렘 4:19).
결국 유다 백성도 전에 니느웨의 백성들이 했던 것처럼 회개할 때가 되었다.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구르며 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임이라”(렘 6:26).
그분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였다.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렘 10:16).
이스라엘을 택하신 분이 왜 그들을 멸망시키느냐고 예레미야는 질문한다.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그러나 하나님은 수수께끼 같은 반문으로 답변을 대신하신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 하겠느냐”(렘 12:5).
그리고 하나님도 예레미야와 함께 눈물을 흘리신다.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렘 14:17).
하나님은 젊은 예레미야에게 그 아픔을 함께 겪자고 하신다.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렘 16:2).
사랑하는 자에게 버림받은 하나님의 슬픔과 앞으로 수많은 자들이 참혹한 최후를 당할 것 때문에 상심하시는 그분의 아픔에 예레미야는 속절없이 동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만군의 여호와’와 아픔을 함께 하는 ‘고독한 선지자’가 되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렘 15:16~17).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는 겨우 8세에 즉위하여 예레미야가 부름 받았을 때와 비슷한 21세가 되어 있었다. 예레미야는 왕을 설득해 바알과 아세라의 모든 신전과 제단과 신상들을 파괴하고 그 사제들을 죽였다. 그러나 요시야는 앗수르를 공격하려고 북상하는 애굽 왕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전사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왕하 23:26).
이제 예레미야에게는 아무 소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 19:11).
예루살렘에서 모든 우상 경배를 금하고 유월절을 다시 지킨 요시야 왕이 BC 609년 전사하자 시체로 돌아온 그를 신복들이 장사하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석 달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올라와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여호아하스를 끌어갔다. 이 무렵, 하박국이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처사에 이의를 제기하며 질문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내가 성루에 서리라
‘하박국’은 ‘껴안는 자’ 또는 ‘씨름하는 자’라는 뜻이었다. 얍복강 나루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듯이 하박국은 하나님의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을 놓고 씨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답변을 듣기 위해 성루로 올라간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 2:1).
그러나 그분의 답변은 분명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그리고 후일 사도 바울에게 확신을 주고(롬 1:17),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가 되고(히 10:38), 마르틴 루터를 일으켜 세운 그 유명한 말씀이 하박국의 귀에 떨어진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하박국은 비로소 ‘만군의 여호와’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깨닫게 된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3~14).
그의 시선은 마침내 세계화(globalization)가 되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합 3:3).
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끄시는 전쟁들을 보고 있었다.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합 3:8~10).
그로부터 3년 후인 BC 605년 느부갓네살 왕이 이끄는 바벨론 군대가 물밀 듯 들어와 예루살렘과 유다를 짓밟고 다니엘을 비롯한 왕자들을 잡아갔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 3:16).
그러나 하박국은 하나님의 높은 경륜을 깨달은 즐거움 속에 있었다. 성루에 올라갔던 그는 이제 성루보다 더 높은 곳에서 소요하고 있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8~19).

바벨론 왕은 BC 597년에 다시 와서 여호야김의 왕위를 계승한 여호야긴과 왕실의 가족과 신복들을 다 잡아가고 정예군 7천과 기술자 1천을 끌어갔다. 또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과 기물을 실어가고 여호야긴의 숙부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남겨 두었다. 그렇게 참담한 가운데서도 예레미야는 소망의 말씀을 받았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7).
하나님은 바벨론 군대가 다시 들어와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 것이며 그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끌려가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고 하셨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렘 29:4~5).
그 기간은 70년으로 되어 있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0~11).
시드기야 왕의 지시로 시위대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는 새로운 예루살렘에 관한 ‘새 언약’을 받았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그것은 율법시대의 언약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

BC 586년 바벨론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이끌고 온 바벨론 군대가 성전과 왕궁을 불살라 유다는 멸망했다. 많은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성전의 놋 기둥과 놋 바다까지 실려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차 예루살렘이 새 이름으로 불리울 것이라고 하신다.
“그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 33:16).
‘여호와는 우리의 의(義)’ 곧 ‘여호와 치드케누’가 그 성의 새 이름이었다. 시위대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는 바벨론군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그에게 바벨론으로 가면 선대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가 애굽으로 가는 자들에게 잡혀 애굽으로 끌려갔다.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슬퍼하며 그 아픔을 함께 하다가 애굽에서 그의 고독한 일생을 마감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을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렘 44:11~12).†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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