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 ㉘|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다윗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현실 속에서 답답할 때면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숨기실 것이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분을 불렀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 하나님이 그 얼굴을 숨기실 것이라고 써 놓았다(신 31:18). 그러나 다윗이 더러 실수한 적은 있어도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에게 눈을 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후로 하나님은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고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셨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암 1:1).

BC 790년 유다 왕 아마샤가 반역자에게 살해되고 그 아들 아사랴가 16세로 왕이 되었다. 아사랴는 블레셋과 아라비아를 제압하고 암몬에서 조공을 받는 등 변방을 안정시켰으나 그의 마음이 차츰 교만해지던 BC 762년 큰 지진이 있었다. 그 지진 2년 전에 예루살렘 남쪽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목자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암 1:2).
아모스는 북왕국의 벧엘로 올라갔다. 여로보암의 금송아지가 있는 곳이었다. 남왕국 유다보다 여로보암 Ⅱ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더 급하게 본 것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나라들 즉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 등에 보내는 경고를 전한 다음 예루살렘의 궁궐은 불타고 사마리아도 파괴되리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암 2:6).
이 예언은 후일 그리스도의 고난과도 연결된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그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은 ‘만군의 여호와’였다.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암 3:13~15).

광장의 울음소리
또 그곳 주민들의 비참한 최후도 예고되었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암 4:2).
아모스는 계속해서 ‘만군의 여호와’를 언급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암 5:16~17).
‘만군의 여호와’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 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이요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암 9:5~6).

아모스는 전할 말씀을 다 전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그 내용을 기록했다. 그리고 2년 후 남과 북에 큰 지진이 일어나 사마리아는 붕괴되고 예루살렘도 불길에 휩싸였다. 당시 유다 왕 아사랴는 성전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아사랴 대제사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분향을 하려다가 지진과 함께 문둥병에 걸려서 격리되었다.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왕하 15:5, 개역한글).
그로부터 ‘아사랴’ 왕의 이름은 ‘웃시야’로 바뀌었다(왕하 15:30). 그리고 아모스가 벧엘에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남쪽으로 돌아간 지 14년 후인 BC 746년 북왕국에서는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지시대로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여 배반당하는 아픔을 몸소 체험한 호세아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으신 하나님의 슬픔과 그 아픈 마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호 2:5).

여호와는 호세아에게 가출한 그 아내를 찾아오라고 하신다. 선지자는 돈과 곡식을 마련하여 인신매매로 팔려가 있는 아내를 찾아온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호 3:3).
그로부터 이스라엘을 향한 호세아의 간절한 호소가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 4:1~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그들은 멸망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래서 호세아는 그 지식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3).
‘알자’는 것은 곧 ‘사랑하자’는 말과 동의어였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그러나 결국 사마리아는 멸망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호 11:5).

또 유다의 모레셋에는 미가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그는 앗수르 군대가 북왕국 이스라엘뿐 아니라 남왕국 유다에까지도 들어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미 5:6).

성한 곳이 없구나
구약 성경에 수록된 선지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할 정도로 선지자의 영감과 예지가 빛나는 문서이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사 1:1).

이사야는 BC 760년경 아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아모스는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와는 다른 인물이며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아마샤 왕의 아우로 되어 있다. 그가 아마샤 왕의 아우라면 아사랴 즉 웃시야 왕과는 사촌간이 된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즉 BC 740년에 성전의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았다. 그리고 그분을 모시고 서 있는 스랍들의 찬송하는 소리를 들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사 6:3).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로 이사야를 처음 만나신 것이다. 그리고 22년 전의 지진 때처럼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며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그 때 스랍들 중의 하나가 제단에서 핀 숯을 부젓가락으로 집어 그에게로 날아와 그의 입술에 대면서 그에게 말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가 떨면서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그렇게 해서 이사야의 사역은 시작된다. 그는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길러준 여호와를 버린 백성은 악한 종자라고 지적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6).

이사야는 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권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 1:9~10).
그들은 먼저 더러운 손을 씻어야 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손의 피를 씻어야 그분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그분은 이제 대적을 징벌하는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사 1:24).
마침내 모든 교만한 자는 낮아질 것이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사 2:12).

만군의 여호와는 더 이상 얼굴을 가리지 않으신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사 5:16~17).

만군의 여호와는 이사야의 아들들을 징조와 예표로 삼으셨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사 8:18).
이사야의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이고 이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여호수아’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엘리사’를 아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이며 그에서 비롯된 구원의 비밀 ‘남은 자(remnant)’를 의미하고,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의 ‘노략이 빠름(making speed)’은 종말의 의미였다.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2).
그러나 그의 경고는 다시 메시야에 대한 소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그것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모습을 드러내신 이유였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신약 성경은 250회 이상 이사야서를 언급했고, 명백한 인용도 50회에 이른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2~23).

이사야는 BC 722년에 북왕국의 멸망을 보았고, BC 701년, 18만 5천 명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히스기야 왕과 함께 기도하여 그들을 물리쳤다. 그는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 왕이 바알의 제단을 쌓고 아세라를 섬기자(대하 33:3~6) 그를 꾸짖었다. ‘이사야 승천기’에 의하면 BC 697년 므낫세는 선지자가 나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고 톱으로 나무와 함께 켜서 죽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사 44:6).†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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