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 ㉗|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다윗은 양을 치는 자였고,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자였다. 성경에 남아 있는 ‘시편’의 150작품 중에 다윗의 것으로 명기된 것이 73편, 그리고 작자가 나와 있지 않으나 다윗의 것으로 인정되는 4편을 합하면 77편이고 그것은 시편의 절반이 넘는다. 다윗 자신도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에서도 자신이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였음을 스스로 자부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삼하 23:1).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끌어내 군인으로 쓰셨고, 끝까지 군인으로 사용하셨다. 다윗에게 그런 놀라운 재능을 주신 하나님이 그를 가수나 시인 아니면 선지자로 쓰시지 않고 왜 전쟁터를 뒹구는 군인으로 쓰셨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애굽의 군인이었던 모세에게도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그것이 아라바 광 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신명기’의 마지막 당부를 끝내고 부른 찬양의 노래에 드러난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신 32:1~2).

그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이스라엘 모두의 노래로 확산시킨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무려 43절에 이르는 모세의 노래를 보면 그분과의 만남으로부터 오해와 갈등과 극복과 용서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의 놀라운 드라마가 그대로 단비처럼 내리며 이슬처럼 맺히고 있다. ‘시편’에도 모세의 노래가 남아 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왜 하나님은 음악적 재능이 있는 자를 그분의 군인으로 쓰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음악 속에 군인에게 필요한 성품과 지략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세 가지 필수적 요소는 선율과 리듬과 화성이다. 선율에 높고 낮음이 있듯이 군인은 상황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리듬이 있듯이 들어가고 나갈 때를 분별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군대의 사기를 이끌어내는 화성(Harmony)이다.

두렵게 하실 때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그래서 유능한 군인은 본능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을 결정하며, 생각의 조화를 지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모세와 다윗은 바로 그런 일에 가장 적합하고 뛰어난 인물로 태어난 자들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성가대’를 조직했던 것이다.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시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대상 15:17).

다윗 성가대의 조직은 절묘했다. 본래 레위 지파의 조상인 레위에게는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세 아들이 있었다. 성가대의 리더 중 아삽은 게르손의 자손(대상 6:43)이고, 에단은 므라리의 자손(대상 6:47)이며, 수석 주자인 헤만은 요엘의 아들(대상 6:33)이었다.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고, 사무엘은 고라의 자손이며, 고라는 그핫의 손자였다(대상 6:37). ‘시편’에는 헤만의 마스길이 하나 남아 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시 88:6~7).
이 노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번뇌하는 다윗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나, 노래를 지으며 헤만은 자신도 모르게 그 노래 속에 지난날 살아남은 고라의 자손들이 겪어온 괴로운 날들과 고통의 여정을 이입시키고 있다. 그럴 때마다 고라의 자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 88:9).

그들에게 한 가지 두려운 것은 그분에게서 버려지는 것이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시 88:14~15).

또 한편으로 헤만의 마음에는 그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다윗의 불륜으로 시작된 나단 선지자의 경고가 늘 가시처럼 걸려 있었고, 그의 눈에는 겉으로 태평한 것 같은 이스라엘에 스며드는 불길한 그늘이 자꾸만 보이고 있었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시 88:16~18).
‘시편’에는 이 헤만의 마스길을 포함해 ‘고라 자손의 시’라고 명기된 작품이 11편 들어 있다. 고라의 때로부터 오랫동안 어둡고 괴로운 세월을 살아온 그 자손들은 자기네 가문에서 사무엘을 배출하고 더구나 그의 손자 헤만이 다윗 성가대의 수석 주자로 발탁 되면서 왕실과 나라에 대한 충성과 관심이 높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시 84:1).
고라 자손은 기도의 용사들이 되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시 84:8~9).
그들은 성전의 문지기를 자처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 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그들에게는 그저 감사한 것뿐이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12).
그러나 성가대의 지도자였던 헤만이 느꼈던 불길한 일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은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황금의 늪 속에 빠져 지내더니 이방 여인들이 들여온 음란한 신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무거운 세와 노역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져 분단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여호와의 음성을 들은 자가 아프기 마련이다.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슬프다 그 날이여
솔로몬 왕은 성전을 완공한 후에도 많은 건축 공사를 벌여 백성 등을 동원했다. 그는 자기 아내 즉 바로의 딸을 위해 게셀을 재건하고, 하솔과 므깃도와 벧호론과 바알랏과 다드몰 등을 건설했으며, 또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을 건축했다. 예루살렘에서도 다윗의 왕궁을 수축하고 자신의 왕궁도 새로 건축했으며 동쪽의 밀로도 새로 건축했다. 솔로몬은 그 모든 현장에 550명의 감독관을 임명했다.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왕상 11:27~28).
그 때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가 새 옷을 입고 여로보암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말했다.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왕상 11:31~32).
아히야는 그 이유도 설명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왕상 11:33).

그러나 다윗을 생각해 솔로몬의 생전에는 빼앗지 않고 그 아들의 손에서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주겠노라고 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애굽에 가 있다가 그가 죽은 후에 돌아와 열 지파를 이끌고 북왕국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분향했는데, 그 아들 아비야의 병 때문에 여로보암의 아내가 실로에 찾아오자 아히야가 말씀을 전했다.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왕상 14:10).
그리고 아히야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여로보암의 아내가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비야가 죽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된 지 33년 만에 죽고 그 아들 나답이 왕위에 올랐으나 2년 후에 반란을 일으킨 바아사의 손에 죽었다. 그러나 반역으로 왕이 된 바아사도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자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했다.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왕상 16:3~4).

바아사가 24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후 그 아들 엘라가 왕이 되었는데 엘라는 2년 만에 반란을 일으킨 시므리에게 죽었고, 시므리는 7일 만에 오므리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왕으로 있을 때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고했던 것이다. BC 931년에 솔로몬이 죽고 남북이 분단되었는데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BC 860년이었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왕상 18:15).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모두 죽인 엘리야는 왕비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호렙산까지 가서 동굴 속에 숨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시자 그가 만군의 여호와께 대답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 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그에게 굴에서 나가 여호와 앞에 서라고 하신 후에 강한 바람이 지나가고 지진이 일어 나고 불길이 솟아오르더니 하나님이 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셨다. 엘리야도 역시 먼저와 똑같이 만군의 여호와께 대답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왕상 19:14).
그로부터 3년 후 선지자 미가야는 환상 속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보게 된다.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왕상 22:19).

엘리야의 능력을 물려받은 엘리사도 만군의 여호와를 섬겼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왕하 3:14).
하늘의 군대가 그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러 군대를 보내 서 포위하여 엘리사의 사환이 두려워하자 그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엘리사가 사환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자 그가 보게 되었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7).
북왕국에서 선지가 엘리사가 사역하고 있던 BC 835년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반란을 일으켜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죽이고 그녀의 손에서 살아남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의 때’를 보고 있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 1:15).
그는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니 모든 민족에게 전쟁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욜 3:9~10).
BC 797년에는 북왕국의 선지자 엘리사가 숨을 거두었다(왕하 13:20). 아삽의 자손들 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시 80:4).†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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