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그루버 칼럼

악마의 제단

나는 무심코 사탄의 제단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갔다. 이 소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 산에서 만날 악마와 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어떤 선포를 하게 할 것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니 처음에는 그곳이 천국처럼 아름다운 산으로 보였다. 넓이 3m, 높이 6m의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는 거대한 제단처럼 보였다. 실제로 바위 가까이에는 4분의 1 크기의 합판에 ‘사탄의 제단’이라고 글이 적혀 있었고, 튀어나온 돌을 가리키고 있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산 아래에는 ‘세상의 끝’이라는 장소가 있었다. 그 두 장소는 실제로 지도에도 ‘사탄의 제단’과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다.

사탄의 제단이라는 곳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자연적으로 제단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 위에 서서 계곡과 그 아래 도시를 내려다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관해서 읽고 나서 하나님을 찬양 하며 기뻐했다. 그 장소를 사탄으로부터 다시 빼앗아오기 위해 그곳에 사탄의 영향력을 무력화시켰다. 이 지상에 악마의 제단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분개했다. 악마가 설교할 수 있는 공적인 장소를 소유하도록 허락 해서는 안 된다. 사탄은 그런 곳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지역에서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생각했기에 산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산으로 다시 올라가라.”
순종하고 돌아갔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나를 덮었다. 산을 조금 올라가자 약 15m 높이의 언덕이 나왔다. 그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갑자기 눈앞에 크게 움푹 파인 그릇의 바닥 같은 장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큰 집회를 열 수 있을 만큼 넓은 장소였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릇 혹은 야외극장 같은 모양의 장소로 산의 정상 가까이에 있었고, 큰 자작나무숲이 주변에 있었다.
그 장소를 탐색해보니 주님께서 왜 그곳으로 가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더니 내 주변에서 휘몰아쳤다.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안하던 5월 아침이 갑자기 큰 폭풍과 바람이 휘몰아치는 음산한 날씨로 변했다.

그것은 내 상상이 아니었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미처 어떤 감을 잡기도 전에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거대한 나뭇가지들이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굽어졌다. 음산함이 느껴졌다. 어디서 그렇게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지 의아했다. 그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극장으로 내려가니 검은 흙이 깔린 원형지역 한 가운데 돌로 된 제단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숯이 널려있었고, 그 위에 슬레이트 조각들이 있었다.
사술을 하는 사람들은 뜨거운 숯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불 위를 걷는 것이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에 대한 믿음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탄의 위조품이다. 이사야 43장 2절은 우리가 불 속을 걸어도 데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뜨거운 석탄 위를 걷고도 화상을 입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fascinate)’적이다.
‘매력(fascinate)’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to bewitch’로 ‘마법을 걸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술에 매력을 느껴 이끌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것을 그저 이상하고 이국적이고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그 납작한 돌 위를 걸어 다녔다. 마치 불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바닥이 뜨거웠다. 몸을 굽혀 돌 위에 손을 대어 보니 전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워서, 으스스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그을린 나무 위에 놓인 돌 위를 걸어 다니자 발이 아주 뜨거워졌다.
나는 생각했다. ‘주님, 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면서 그 주변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내 발은 마치 불 위를 걷는 것처럼 뜨거웠다. 주님께서는 내게 제단 위에 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포하라”고 말씀을 주셨다.
‘사면’이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선포하다, 간구하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죄를 사면하고, 땅을 회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길 원하신다.

생명을 주시는 분
땅이 공허하고 형태가 없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깊음의 수면에 선포되었고 세상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셔서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지만, 인간만은 직접 손으로 흙을 빚어 만드셨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어라! 있어라! 있어라!” 그렇게 말씀하시자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나를 흙으로 만드셨다. 우리의 육은 티끌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 그리고 그분의 숨을 우리의 코에 불어넣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분만할 때 돕는 것을 좋아한다. 자녀 중 6명은 내 손으로 받았다. 나는 그렇게 아내를 돕는 것을 즐겼다. 아내인 쥬디스와 나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늘 영으로 기도했다. 작은 아기의 머리가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할 때 그리고 아기의 첫 울음이 들릴 때 나는 부드럽게 말하곤 했다.
“우리 가족으로 온 것을 환영한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단다. 탯줄을 끊기 전에 너에게 알려주고 싶구나. 우리는 너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탯줄을 엄마에게서 끊어주마. 나는 너를 예수 그리스도 주님께 올려 드리겠다.”
13명의 내 자녀 중 6명의 자녀는 집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내가 들려주는 이런 환영인사를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내 믿음을 시험한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출산에 관한 문제를 경험했다. 양수가 터지기도 했고 사산도 했다. 나는 의학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위급상황에 사용할 응급처치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위대한 의사인 하나님께 완전히 의뢰했고,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나와 함께 하셨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는 분, 생명을 주시는 분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 잘못된 것을 뒤집으시며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는 분이 함께 계셨다.

쥬디스와 내가 아기들을 그렇게 환영한 이유는, 아기들이 이 세상에서 처음 듣는 말들이 그런 말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기들이 환영받고 우리가 아빠와 엄마로서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우리가 그들을 사랑과 경책으로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탯줄을 자르고 아이들을 아버지께 돌려드렸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서는 부모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운명은 우리의 손이 아닌 아버지의 손에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놀라운 자유를 준다.†

헨리 그루버 (목사)

‘세상을 걷는 중보기도자’로 알려 져 있는 필자는 18세 때부터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의 우범지역에서 주님과 함께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걷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가 만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을 전하고 있다. 그의 삶에는 초자 연적인 이적들이 많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으며 기도한다는 사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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