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㉒|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그분에게서 떠나 서로 싸우게 된 인간의 세상에서는 힘이 세고 잘 싸우는 자가 그 집단을 지배했다. 그리고 힘센 지배자는 냉혹하고 난폭한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권능의 하나님 즉 ‘엘’이라는 이름을 감추고 숨으셨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무지개의 언약을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며 바벨탑을 쌓았다. 하나님은 사람의 급속한 멸망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어 놓으셨다. 언어가 달라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며 살았다. 3,600명의 신들을 섬기던 우르 땅에서 창조주는 오직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천체가 우리의 유익에 기여하는 것은 그들을 주관하시는 한 분의 창조주에게 순종하기 때문이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7)
하나님은 그를 불러내 동행하시며 전투적인 표현을 시작하신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땅을 주시겠다면 그것은 곧 쳐들어가서 빼앗으라는 뜻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 즉 ‘엘’신을 몰아낸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이었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사탄이 있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對敵)하는 자’였고,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그를 죽이려고 작정해 미혹하고 있는 ‘원수(怨讐)’였다.

대적의 성문을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북방 연합군을 318명의 사병으로 기습하여 납치당한 조카의 가족과 빼앗겼던 재물을 되찾아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나는 너의 방패와 상급’이라고 말씀하셨다. 방패(shield)는 군대가 사용하는 장비이고, 상급(reward)은 병사의 전공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모르는 사이에 그를 전사로 키우고 계셨던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애굽에 들어갈 것을 예고한 말씀도 전투적이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 리라”(창 15:13~14).

뿐만 아니라 네 아들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무리한 요구를 아브라함이 받아들이고, 이삭이 그 부친의 결단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서 그분의 속 마음을 남김없이 다 드러내셨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6~17).
아브라함 자신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씀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언약의 씨’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사람을 죽이려는 ‘원수’인 사탄의 성문을 쳐서 빼앗으리라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씨가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도 그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가는 게 아니라 침노하여 빼앗는 것이라고 일러 주셨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하나님과 사람이 그 독자를 맞바꾼 역사적 거래의 현장을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이었다. 이후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큰일이나 심각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로부터 유래된 말을 곧잘 쓰곤 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창 22:14).
그래서 애굽에 들여보내 강하게 길러낸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이끌어내실 때에도 하나님은 군인 출신의 모세를 택하여 그 일을 수행하게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어린 양을 잡아 인방과 설주에 피를 뿌린 밤에 열 번째 재앙이 임했다. 하나님이 ‘멸하는 자(destroyer)’ 를 보내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바로의 장자로부터 모든 백성의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치셨으나 그것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그 ‘멸하는 자(출 12:23)’는 누구였을까?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군대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모세는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말을 잘 쓴다. 모세가 애굽 땅에서 나온 백성을 하나님의 지시대로 블레셋 길로 인도하지 않고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바알스본 맞은편에 장막을 쳤을 때, 그들을 보내놓고 후회한 바로가 전차대와 기병대를 이끌고 추격해 왔다. 백성들이 동요할 때에 모세가 크게 외쳤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그 날의 사령관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 14:17~18).
지팡이를 든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어서 물을 갈라지게 하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가운데로 걸어서 바다를 건넜고, 그들을 따라 바다로 뛰어든 애굽의 전차대와 기병대는 다시 뒤덮인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다를 다 건너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존의 피안에서 하나님이 애굽 군대를 치시는 큰 능력을 목격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송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출 15:3~5).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얻기까지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 나님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에서 물 때문에 고생할 때에 마라의 쓴 물을 달게 고쳐 치료하시는 여호와 즉 ‘여호와 라파’이심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기도만 했을 뿐 여호수아를 이끌고 나가 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모세도 그것을 인정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5~16).

너와 함께 하리니
하나님이 호렙 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 발의 신을 벗게 하신 다음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도록 하겠다고 말씀 하시자 바로에게 쫓겨 미디안 땅에 와 있던 모세가 그분께 반문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이스라엘 자손이 40년간 광야를 행군할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모세와 함께 그들을 이끌었다. 40년 후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모세로부터 지휘권을 물려받은 여호수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격려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이미 하나님은 40년 전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와 함께 싸우신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길갈에서 백성들의 할례를 행한 후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곡식을 먹었고 다음 날부터 만나가 그쳤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군을 이끌고 여리고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칼을 빼들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여호수아가 그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4, 개역한글).
그리고 40년 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 5:15).
자신을 여호와의 군대장관(captain of the Lord's host)이라고 밝힌 그는 바로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Lord of hosts, 히: 여호와 체바옷)’ 그분 자신이었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그분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사람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난 후로 상심하여 숨어 계셨던 하나님은 늘 그렇게 애통과 탄식 속에만 머물러 계실 수는 없었다. 그분은 또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며 역사의 바른 운행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그 정의와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그분은 싸우실 수밖에 없다.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신 32:41~42).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는 승리를 다짐하신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신 32:43).
하나님과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사탄의 계략에 말려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맞서겠다며 바벨탑을 쌓게 되자 그것을 저지하려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흩어놓는 방법밖에 없었다. 서로의 소통이 막혀서 흩어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풍습과 문화 속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며 살았기 때문에 개인의 갈등은 자주 집단적인 충돌로 이어졌고,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확대되었다.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창 14:8).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으므로 그들이 하나님 앞을 떠나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하든지 지켜보고만 계셨다. 그러나 집단과 집단의 충돌이 창조세계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데까지 확대된다면 하나님은 칼을 빼어 그 전쟁에 개입하시는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가나안 진입과 점령은 하나님께서 이미 680년 전에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것이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 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1).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진입한 BC 1406년은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 였고, 그 전쟁은 하나님이 칼을 빼어 직접 개입해야 하는 전쟁이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그렇게 해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여리고 성을 점령했고, 아이 성을 정복한 후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과 전쟁할 때에는 하늘에서 큰 우박을 내려 그들을 치셨고, 이스라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할 때에 이미 해가 기울고 있어서 시간의 확보가 절실한 여호수아가 하늘을 향해 소리칠 때 그에게 응답하셨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 10:12).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의 군대를 다 섬멸할 때까지 태양은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않았고 달도 역시 멈추어 때를 기다렸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이후로 여호수아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군대는 요단 강 건너편의 산지와 평지와 광야로 들어가며 31왕의 지역을 정복했다. 그러나 아직 남은 땅이 많으므로 이미 백세를 넘긴 여호수아는 그 모든 땅을 각 지파에게 미리 분배하고 그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수 24:14).
백성이 일제히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수 24:24).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어 에브라임 산지에 장사되었다. 그러나 그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은 후의 다음 세대는 여호와가 누구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도 알지 못했다.†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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