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그루버 칼럼

누가 그리스도의 형제를 박해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열방이 아닌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온 땅을 통치하셨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열방을 통치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정치적이 아니라 영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어떻게 도울지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1957년 7월, 벤구리온 이스라엘 수상은 이렇게 선포했다. “2000년 동안 우리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고 때가 충분히 차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 맞설 수 없다.” 이스라엘이 돌아오면서 성경의 문자 중에 묻혀있던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예언 말씀이 우리 눈앞에서 성취되었다. 2000년 동안 땅도, 지도자도, 성전도 없이 열방에 흩어져 끊임없이 박해를 당하다가 히틀러에 의해 멸절될 위기에 처해있던 민족이 하루 만에 국가로 태어났다. 성경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사 66:8b).
벤구리온은 1956년 시온주의 연설에서는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은 메시야 귀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을 모른다고 무시하지만 유대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의 재건이 메시야 시대를 여는 사건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눈에 덮개가 씌어 유대인과 모든 인류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건국 과 예루살렘 회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준비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전심 로 사랑하는 것, 이렇게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마음과 영혼과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사랑하신다.
그리스도는 신부인 우리를 불타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그렇게 뜨겁게 사랑할 때 만족을 느끼신다. 그리스도는 신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하늘의 영광을 부어주셨고 하늘의 권세와 능력을 유업으로 주시며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신부를 맞으러 이 땅으로 오기 위해 하늘과 땅을 준비시키고 계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세운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눈동자”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구속사를 위해 선택한 유일한 그릇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이 아닌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온 땅을 통치하셨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열방을 통치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정치적이 아니라 영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어떻게 도울지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에게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원리로 그리스도의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고난 중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를, 아브라함의 자손을 돌보지 않고 저주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형제, 아브라함의 자손을 학대하고 심판받지 않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유럽과 북미의 교회는 오랫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그리스도의 자손을 학대해왔다. 초대교회 때에는 서신서나 역사적 문헌들이 보여주듯이 예루살렘이 신앙의 중심지였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천명이 하루아침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정도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후로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는 번성했고 유럽이나 중동의 교회는 겸손하게 예루살렘 사도들의 지도를 받았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대인이 전 세계로 흩어져 살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교세가 기울게 되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경고한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a).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가 사라지고 예루살렘 교회의 위상도 약해지자 비유대인들로 가득차게 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교회를 대신 구속의 통로로 택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교부 중에는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이제는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는 신학이 나타났다.

콘스탄틴 황제가 4세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그때까지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던 유대교와 기독교 중에 기독교에게 유리한 법률을 재정하면서 유대교는 더욱 몰락하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사순절 기간마다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그에 대한 저주를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설교했다. 로마인 본디오 빌라도와 로마 병사 그리고 우리의 죄보다는 유대인의 죄를 더 크게 부각시켰다.
그 결과 반유대주의가 유럽에서 기승을 부렸고 10세기에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원정을 떠나기 전에 유럽 국가들 안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먼저 학살하고 회당을 불태웠으며 예루살렘에서도 만여 명을 학살했다. 유럽 국가들은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에게 신을 죽인 자라는 죄명을 덮어 씌여 자국 내의 정치적인 불안을 해소하는 희생양을 삼아 재산을 빼앗고 추방하거나 죽였다.

개신교도 반유대교의 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개신교 교회 내에 가톨릭교회의 교부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여전히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악한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악해서 버리고 교회를 대신 택했다는 ‘대체신학’이다.
루터는 초기에는 자신처럼 가톨릭교회에 학대 받은 유대인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유대인이 개종하지 않자 유대인의 회당은 불태우고 악한 유대인은 독일에서 추방시켜 버려야 한다는 설교를 했다. 그래서 20세기 중반 히틀러는 유대인을 600만 명을 죽이며 자신이 루터의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인구의 90%가 기독교인이었던 독일에서 현대사에 일어난 사건이다. 기독교 대륙 유럽에서 그리스도의 형제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당한 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유럽교회는 껍데기만 남았다.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사 41:11b).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b).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18, 20b).
트루먼 대통령을 통해 이스라엘의 건국을 도왔고, 유대인들을 환영했고,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재정을 지원한 미국이 여전히 기독교가 번성하고 국가가 강성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오실 통로인 이스라엘을 돕는 국가를 어떻게 축복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헨리 그루버 (목사)

‘세상을 걷는 중보기도자’로 알려 져 있는 필자는 18세 때부터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의 우범지역에서 주님과 함께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걷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가 만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을 전하고 있다. 그의 삶에는 초자 연적인 이적들이 많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으며 기도한다는 사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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