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⑳|사람의 생각은 허무하고

BC874년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아합은 당시의 무역 대국인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여 경제를 안정시켰고, 4년 후인 BC 870년 남왕국 유다의 왕 위에 오른 여호사밧은 각 성읍에 방백들과 레위인들을 보내 말씀을 가르치며 군사력을 강화했다. 북과 남이 방향은 서로 달랐으나 전성시대를 맞은 셈이었다. 국력에 자신이 생긴 여호사밧은 분단 70년 만에 남북 대화를 추진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대하 18:1).
그러나 서로 ‘다른 신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추진한 화해는 잘못된 만남이 되어버렸다. BC 853년 아합 왕은 길르앗 라못의 전쟁에서 아람 군대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간신히 도망쳐 회군했다. 북에서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이었다. 여호사밧 왕은 북과의 화해 정책이 왜 잘 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새 왕 아하시야와 계속 경제 협력을 유지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대하 20:35~36).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없애버리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협력 사업은 잘 될 수가 없었다.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 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대하 20:37).

악인이 언제까지
실정의 책임을 느낀 여호사밧 왕은 BC 853년 아들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았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한 바로 그 아들이었다. 그리고 북에서는 여호람의 처남이며 아달랴의 오라비인 아하시야의 끝 날이 다가왔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왕하 1:2).

병상에 누운 아하시야는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특사를 보내 자신이 살 수 있겠는지 물어보게 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세붑은 ‘파리의 주’ 또는 ‘똥의 신’이라는 괴이한 이름을 가진 신인데 아하시야가 그리로 사람을 보낸 것이다.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마지막 사명을 주어 아하시야 왕에게로 보냈다.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왕하 1:16, 개역한글).
그 말씀대로 BC 852년 아하시야는 죽었고, 아들이 없어서 그 아우 ‘여호람’이 왕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렇게 두 해에 걸쳐 남과 북에서 잇달아 ‘여호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 이 왕의 자리에 올랐다. ‘여호람’이란 여호와께서 높이셨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이름의 뜻대로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남과 북의 많은 선각자들이 양국의 그런 모양을 바라보며 근심하고 있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시 94:2~4).
그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징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 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 94:9~11).

그리고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일어서기를 고대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시 94:16).
그리고 BC 852년 마침내 엘리야의 후계자가 된 엘리사의 때가 시작된다. 모세가 홍해의 물을 갈랐듯이 엘리야가 요단의 물을 가르고 건널 때 엘리사가 그의 스승을 따라 요단을 건너며 큰 소리로 그에게 외쳤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그러자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할 때 엘리사가 하늘을 보며 외쳤다.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왕하 2:12).
그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집어서 요단의 물을 쳤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그러자 엘리야가 물을 쳤을 때처럼 요단의 물이 갈라지고 엘리사는 요단을 건넜다. 그 모든 것을 지켜 본 엘리야의 생도들이 그를 보며 엘리야의 영감(靈感)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고 하여 그를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보내지 말라.”

그렇게 해서 해방 세대의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삼았던 것처럼 분단 시대의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가 된 것이었다. ‘여호수아’의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의미였고, ‘엘리사’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은 모두 베들레헴에 태어나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여호사밧이 그 아들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아직 섭정할 때에 북왕국의 여호람 왕이 그에게 사신을 보냈다. 조공을 바치던 모압 왕이 배반했으니 함께 치자는 것이었다. 두 왕이 에돔 왕의 안내를 받아 광야 길로 들어섰으나 이레 만에 물이 떨어져 큰 낭패를 당했다. 여호사밧이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왕하 3:11).
그 때 여호람의 신하 중 하나가 정보를 고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야는 여호람의 형 아하시야가 죽으리라고 예언한 선지자였고, 그 엘리야의 영감을 이어받은 엘리사가 여리고의 물 근원에 소금을 던져 나쁜 물을 고쳤다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세 왕은 즉시 엘리사를 찾아갔다.

거문고를 탈 때에
엘리사가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듣고 세 왕이 그를 찾아갔으나 그들 중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있는 것을 보자 엘리사의 응대는 냉담했다.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아비 아합과 어미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나 찾아가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여호람이 고개를 숙이며 간청했다.
“여호와께서 우리 셋을 모압의 손에 넘기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꺼내며 말하자 엘리사가 대답했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왕하 3:14).
엘리사는 군인 출신의 선지자였던 엘리야의 후계자답게 세 나라의 큰 군대를 이끌고 자신을 찾아온 그들 세 왕 앞에서 자신은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것이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왕하 3:15).

세 왕에게는 뜻밖의 요구였다. 큰 군대가 물이 없어서 위험에 빠졌는데 ‘만군의 여호와’를 섬긴다는 엘리사가 ‘거문고 타는 자(minstrel)’ 즉 음유시인을 불러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 국면에서 음유시인을 데려오라고 한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칼과 창으로만 싸우시는 분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멈추어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왕하 3:16).
세 왕이 그 말을 듣고 놀라며 되물었다.
“개천을 파라구요?”
그러나 곧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아침이 되어 소제를 드릴 때에 에돔 쪽으로부터 많은 물이 흘러 들어와 모든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 병사들과 짐승들이 모두 마시고 해갈을 했음은 물론이고, 모압 군대 쪽에서 볼 때에는 그 물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붉은 피처럼 보였다.
“저들 중에 싸움이 일어나 서로 죽였는가보다.”
그러나 세 나라 연합군의 진영으로 들어간 모압 군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해 모든 군사를 잃고 겨우 칠백 명만 남아 퇴각하게 되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칼과 창을 쓰지 않고 모압 군대를 물리친 이 사건은 장차 모든 나라가 서로 치려고 일어나 전쟁할 때에 그분이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처결하실는지 미리 보여주신 ‘징조’였다. 이후로도 엘리사는 창검 속에서 의연할 수 있는 평강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들을 이끌 때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 주셔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분단 시대의 엘리야가 긴 가뭄을 통과하며 사르밧 과부의 통과 병에서 나오는 가루와 기름으로 연명하였듯이 엘리사도 역시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시기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왕하 4:2).
일찍 요절한 제자의 아내에게 그렇게 묻자 그녀는 오직 한 병의 기름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엘리사는 이웃에게 가서 많은 그릇을 빌려오게 하고 그릇에 병의 기름을 붓게 했다. 모든 그릇이 찬 후에야 기름은 멈추었다. 과부는 그것으로 빚을 갚고 두 아들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후일 예수께서 보이신 ‘오병이어’의 ‘징조’가 된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왕하 4:13).
엘리사가 그를 자주 대접해 준 수넴 여인에게 그렇게 물었으나 달리 바라는 것이 없어서 보니 남편은 이미 늙었고 아들이 없는지라 그녀를 축복했다.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과연 여인이 잉태하여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으나 잘 자라던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 여인이 말을 타고 선지자가 있는 갈멜 산으로 달려가자 엘리사가 따라가 여호와께 기도 하고 자기의 입술과 눈과 손을 아이의 입술과 눈과 손에 대며 엎드리기를 두 번 계속하니 아이가 살아나 눈을 떴다. 이것도 후일 예수께서 나인 성의 장례 행렬을 멈추시고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신 사건의 ‘징조’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눅 5:12, 개역한글).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중에도 특히 문둥병자가 많았다. 예수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눅 5:13).
그러자 곧 그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나 이미 엘리사의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한 소녀가 능력 있는 선지자에 관해 하는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았다. 나아만이 군대를 이끌고 그의 집에 당도했으나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고 사람을 보내 그에게 일렀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왕하 5:10).
나아만 장군이 그대로 했더니 과연 고침을 받았다. 그가 엘리사에게 돌아와 크게 감사하며, 자기 왕이 림몬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 왕을 부축하여 함께 몸을 굽혀야 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엘리사가 그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라”(왕하 5:19).
엘리사가 있는 동안에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을 침입하지 못했다. 레갑의 지도자 요나 답과 손을 잡고 아합 왕실을 쳐부순 예후의 시대에 엘리사가 살아 있어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을 견제하며 이스라엘을 지켜냈다. 엘리사는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거쳐 그 손자 요아스가 왕으로 있던 BC 797년까지 생존했다. 그가 숨질 때 요아스가 울며 엘리사가 그 스승이 승천할 때 했던 말을 따라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왕하 13:14).
그렇게 해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의 시대는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하나님은 택하심을 받은 자녀들에게 많은 기사와 표적과 징조를 보여 주시며 끝까지 지켜주고 계셨던 것이다.†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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