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⑲|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사탄의 기본 전략은 ‘갈라놓기’였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고, 남편과 아내 사이를 갈라놓고, 형과 아우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리고 그 공작의 절정은 바로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것이었다. 그 후로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남과 북은 변질되었고, 북은 북대로 먼저 붕괴되고 남은 남대로 좀 더 버티어 보다가 멸망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7).
그러므로 분단 시대에 말씀을 받은 선지자에게 비통하고 험난한 길이 예비되어 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연명하던 엘리야는 시내가 마르자 다시 말씀을 받았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왕상 17:9).

하나님은 때로 그분이 택한 선지자를 매우 황당한 장소로 이끄신다. 두로와 시돈은 가나안 민족의 중심인 페니키아 지역이었고, 바알과 아세라의 본거지였다. 북 왕국의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한 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고 아세라 상을 세웠던 것이다. 엘리야는 그 시돈 땅으로 들어갔다. 그가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성문에 이르렀을 때 나뭇가지를 줍는 한 과부를 만났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왕상 17:10).
날이 가물어 비가 오지 않는 때에 가장 귀한 것은 물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사르밧의 과부는 성품이 착했다. 그녀가 물을 가지러 갈 때 엘리야가 한 마디를 보탰다.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자 여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의 기름 조금 있을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 합니다.”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그렇게 하되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그대와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그리고 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4).

살아 남으려면
여인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심경으로 그의 말에 따랐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이는 곧 환난의 날에 살아남는 방법을 일러 주신 것이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하나님은 그 구사즉생(求死則生)의 생존법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과부의 아들이 숨졌을 때 엘리야는 아이의 시신을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신의 침상에 눕힌 다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그가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다시 외쳤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러자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났다. 엘리야가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내려가 그 어미에게 돌려주자 그녀가 놀라며 말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 17:24).

이는 어떤 환난의 날에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사르밧의 과부뿐만 아니라 엘리야에게도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이 일은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사건으로 연결된다. 군인 출신의 기개를 회복한 그가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를 만나 아합 앞에 서겠다고 선언한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왕상 18:15).
군인 출신인 엘리야는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고 밝힌다. 이스라엘 백성이 국난의 시대에만 찾던 ‘여호와 체바옷’ 곧 만군의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내세우는 그가 아합 왕 앞에 나서자 아합이 그를 노려보며 묻는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과 아세라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이 3년간 비를 내리지 않았고, 엘리야가 그것을 예고했던 것이다. 엘리야가 그것을 지적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상 18:18).
그리고 바로 그 바알과의 대결을 선언한다.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 18:19).
엘리야는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고 바알의 제사장들이 그 중의 하나를 가져다가 각을 떠서 그들의 제단에 올려놓고 그 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그들이 저녁까지 자기네 신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몸을 찢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엘리야가 열 두 개의 돌로 제단을 쌓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제단 위에 놓았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 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가 그렇게 기도하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다. 모든 백성이 엎드려 소리쳤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엘리야는 도망치는 바알의 제사장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기손 시내까지 쫓아가서 모조리 칼로 베어 죽였다. 왕비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서 그 소식을 듣고 엘리야에게 그녀의 사신을 보냈다.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나서자 브엘세바로 도망한 엘리야는 광야로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신을 이제 죽여 달라고 간구한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 19:4).

나만 남았거늘
일이 여의치 않을 때 이제 그만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은 군인 출신들의 공통점이었다. 모세도 백성들의 원망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떼를 썼다.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5).
하나님은 죽여 달라는 엘리야를 일으켜 떡과 고기를 먹이신다. 엘리야가 먹고 일어나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어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 산에 이르렀다. 그가 한 굴에 들어가서 머물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다시 군인 출신으로 돌아온 엘리야는 ‘만군의 여호와’를 찾는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현실 속에서 보이는 일들이 너무 비관적일 때 하나님의 사람들도 더 이상 ‘징조’가 보이지 않으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다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엘리야를 동굴에서 불러내신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그리고 하나님의 다음 조치를 위해 엘리야를 사용하신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5~16).
사람의 잘못으로 사태가 험하게 돌아갈 때에도 그것을 지켜보며 국면을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엘리야에게 확인시켜 주신 것이었다. 하사엘은 장차 아람 왕이 되어 이스라엘에 큰 고통을 안겨줄 장수였고, 예후는 반란을 일으켜 아합 왕실을 뒤엎을 사람이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그 시대에 사역할 후계자였던 것이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종말은 그렇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본래 아합의 부친 오모리의 때부터 가나안의 시돈 왕과 가까워진 것은 시돈과 두로 사람들이 무역에 능하여 경제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한 아합이 BC 874년에 즉위해 북왕국 이스라엘의 형편이 좀 나아졌던 BC 870년 남왕국 유다에서는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즉위했다. 내치를 안정시킨 여호사밧은 분단 70년 만에 북 왕국과 재결합을 꿈꾸며 화해를 모색했다.
“여호사밧이 아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왕상 22:44).
그리고 그 대화의 일차적 결실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 시켜 사돈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대하 18:1).

유다와 화해하여 남쪽의 걱정을 덜은 후에 아합은 이스라엘을 자주 침공해 괴롭히던 아람 군대와 싸워 크게 승리하자 마음이 느긋해져서 목숨을 구걸하는 아람 왕 벤하닷을 그대로 놓아 주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왕상 20:42).
그런 후에 아합은 갑자기 마음의 병에 걸렸다. 이스르엘의 한 포도원을 탐내어 사려고 했으나 그 주인 나봇이 거부하므로 애를 태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왕비 이세벨이 나봇을 반역죄로 몰아 죽였다. 아합이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내려 갔을 때 디셉 사람 엘리야가 나타났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엘리야가 큰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왕상 21:19).
왕비 이세벨에게도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왕상 21:23).
그리고 아합에 속한 모든 자도 마찬가지였다.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왕상 21:24).
그리고 마침내 아합의 최후가 다가왔다. 전쟁 없이 3년을 지낸 BC 853년,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사돈인 아합 왕을 만나러 갔을 때 그는 아직도 아람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호사밧 왕이 아합 왕에게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권하자 아합 왕은 선지자 4백 명을 모아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왕상 22:6).
여호사밧이 또 다른 선지자가 있느냐고 묻자 아합이 대답했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그의 말도 듣자고 해서 그를 불러들였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왕상 22:14).
미가야는 아합이 우려했던 대로 불길한 말을 전했다.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왕상 22:19~20).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영을 4백 명 선지자들의 입에 넣었다고 미가야가 폭로했다. 거짓말을 한 4백 명의 우두머리인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물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갔으나 적군의 화살에 맞아서 도망치다가 죽었고, 그의 전차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을 때 개들이 와서 그의 피를 핥았다.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왕상 22:38).†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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